그냥 저냥

어설픈 규제 비웃는 '수능시계'

새 날 2014. 11. 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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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학년도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며칠전 여행 겸 들른 모 사찰에선 수능 고득점을 바라는 학부모들의 부처님 앞에서 연신 절 올리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부모가 절을 한다고 하여, 그 대상이 알라신이든 부처님이든 혹은 하느님이건 간에, 아이들의 실력이 하루 아침에 달라지는 건 아닐 테지만, 나 역시 그들의 애끓는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니 같은 부모의 입장으로서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아무쪼록 부모들의 정성이 시험을 치를 아이들에게까지 제대로 이르러 자신들의 실력 이상을 발휘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수험생이 수능 당일 시험장에 들어설 때 갖춰야 할 조건이 꽤나 까다로운 모양이다.  아마도 갈수록 지능화되고 첨단화돼가고 있는 부정행위를 방지하고자 내놓은 특단의 묘책이 아닐까 싶다.  우리 땐 볼 수 없었던 낯선 풍경이라 뭐라 표현하기도 참 거시기하다.  디지털이 낳은 새로운 풍속도일 테다.  그렇다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제시하고 있는 시험장 반입금지 및 휴대 가능한 물품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

 

반입금지

휴대용 전화기, 디지털 카메라, MP3, 전자사전, 카메라 펜, 전자계산기, 라디오,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 시각표시와 교시별 잔여시간 표시 이외의 기능이 부착된 시계 등 모든 전자기기
 

휴대가능

신분증, 수험표, 컴퓨터용 사인펜, 수정테이프, 흑색 연필, 지우개, 샤프심(흑색, 0.5mm), 시각표시와 교시별 잔여시간 표시 이외의 기능이 부착되지 않은 일반 시계 (스톱워치·문항번호 표시 기능이 부착된 시계는 불가)

 

* 휴대 가능물품 외 모든 물품은 매 교시 시작 전에 가방에 넣어 시험실 앞에 제출
(휴대하거나 감독관의 지시와 달리 임의의 장소에 보관하는 경우 부정행위로 간주)

 

언뜻 봐도 디지털로 이뤄진 기기류는 대부분 반입이 금지된 듯싶다.  한시라도 '디지털 라이프'로부터 벗어나 본 적 없었을 우리 아이들에겐 꽤나 까다로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문제를 풀며 시간 안배를 해야 할 아이들에게 있어 시간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일 텐데, 이를 확인 가능케 할 손목시계마저도 몹시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는 터라 학부모들과 아이들의 불만이 연신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능시계'로 검색해 보았더니 무려 16,266개의 상품이 뜬다

 

그런데 외려 이런 황당한 상황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간파한 업체들의 상술이 그 이름조차 오묘하기 그지없는 '수능시계'를 탄생시켜 가며 한철 장사에 돌입한 모양새다.  오늘자로 보도된 기사(수능 망칠 수능시계 판매, 당국은 뒷짐)에서의 문제점 역시 이로부터 파생된 듯싶다.  시계 판매 업체들이 '수능시계'라는 타이틀과 함께 수능시험장 반입이 가능한 물품이라며 홍보하고 나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한 모양이다.  부모들의 애타는 심정을 상술로 역이용한 아주 나쁜 사례다.

 

하긴 아날로그 시계가 아닌 이상 연도와 날짜 표시 등은 요즘 디지털 시계에 있어 기본으로 탑재된 기능일 테니, 제시된 기준에 따르자면 당연히 반입이 금지될 수밖에 없을 테다.  결국 업체들의 상술에 놀아나고 있는 셈인데, 문제는 업체의 말만 믿고 수험생이 이를 휴대한 채 시험에 임했다 자칫 부정행위로 간주되어 시험을 망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렇게까지 까다로운 조건들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엔 그만한 사연이 있을 테고, 나로선 충분히 수긍하는 입장이다.  첨단화된 디지털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 역시 그와 함께 첨단을 내달리다 보니 이를 막기 위한 방식 또한 갈수록 교묘해질 수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일부 몇몇 사람들의 부정행위로 인해 모든 디지털 기기의 반입이 금지되고, 심지어 시험 중 시간 안분에 있어 절대 없어선 안 될 시계마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나선 작금의 상황, 이는 결국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 아닐까 싶다.  통신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워치가 아닌 이상 시험에 있어 필수품인 시계 정도는 현실적으로 반입을 허용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시험장 내 벽걸이 시계라도 제대로 점검하여 정상 작동토록 조치하고, 또 모두가 쉽게 볼 수 있도록 정면에 걸어주는 배려를 해주던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험생에게 아날로그 시계 내지 오로지 시간 표시 기능이 있는 디지털 시계 류의 반입만 가능케 한 조건은 너무 가혹하게 다가온다.

 

단 한 차례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모든 수험생이 아날로그 시계를 구입한다는 건 모양새도 우습거니와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시계 판매 업체들의 한철 장사 잇속을 챙겨주기 위한 정부의 의도적인 배려라면 또 모를까, 굳이 '수능시계'를 대박 터뜨리게 만들 이유 따위 딱히 없다.

 

시험 감독관들이 눈을 부라리며 감독을 하는 이유는 부정행위를 잡아내기 위함일 테다.  통신 기능이 없는 손목시계는 허용해주고, 나머지 부정행위에 대한 감독을 감독관들의 몫으로 떠넘기면 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저 뚫는 부정행위 신공을 선보이는 부류가 있다면, 이는 그냥 신의 영역이라 여기고 눈 감아 주자.  어쩔 도리 있겠는가.  그렇다고 하여 벼룩 한 마리 잡겠다며 초가삼간 모두 태우는 일 또한 너무 무모하지 않겠는가.

 

최악의 경우 이도 저도 여의치 않아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할 바엔 여전히 혼란만 가중시키는 셈이 될 테니, 차라리 모든 수험생들의 시계 반입을 일괄적으로 금지시키고, 국가에서 별도의 수능시계를 마련하여 수능시험 당일 수험생들에게 빌려주는 방식은 또 어떨까. 

 

어쨌든 가뜩이나 시험 때문에 노심초사해 하고 있을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부차적인 문제로 혼란스럽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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