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비겁한 어른으로서 부끄럽다

새 날 2014. 9. 27.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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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가 끝날 즈음 시간대면 집앞 골목 입구에서 족히 10명은 돼 보이는 청소년 아이들이 무리지어 떠듭니다.  그제부터의 일입니다.  첫날은 저러다 곧 가겠거니 하며 그냥 모른 체 했습니다.  헌데 어제도 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무리가 와서는 떠들고 있는 게 아닌가요? 

 

너무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방치했다간 골목이 자칫 아이들의 아지트가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어떤 상황인가 하여 슬쩍 밖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가관이었습니다.

 

입에는 전부 담배 한 개비씩 문 채 연신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습니다.  남학생 여학생 가릴 것 없이 모두 한결 같은 자세였으며, 주변 상황 따위 아랑곳없이 커다란 목소리로 수다 떨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모양새가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마치 성인들의 행동을 꼭 빼닮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욱 가관이었던 건 주변에 어른들이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들에게 신경 쓰거나 이들의 행동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더라는 사실입니다.

 

수년 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실은 제가 이런 꼴을 못 보고 사는 성격입니다.  게다가 그동안 집앞 골목이 이러한 부류의 아이들로 인해 엄청난 혼돈을 겪어왔던 참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평화와 고요함을 찾기까지 지난한 노력과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뉴시스

 

무엇보다 한밤이고 새벽이고를 떠나 달콤한 밤잠을 방해하는 녀석들 때문에 고통이 이만 저만 아니었습니다.  좋게도 타일러보고 때로는 윽박지르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112에 신고하기를 밥먹듯 하였으며, 이들과의 언쟁이 싸움으로 번져 본의 아니게 경찰서를 들락거리게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카오스 상태의 골목을 현재의 평화로운 골목으로 탈바꿈시키기까지 저 혼자 고군분투하던 와중에 안타깝게도 주변의 어른들 중 저처럼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변이 시끄럽던지 말던지,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며 가래침을 마구 뱉던지 말던지, PC방에서 가져온 홍보물 등을 뿌리거나 쓰레기를 버려 주변 환경을 어지럽히던지 말던지, 마치 남의 일인 양 나몰라라 하기 일쑤였습니다. 

 

물론 곁을 지나치던 행인들 중 일부가 이러한 아이들의 일탈 행위를 보며 혀를 끌끌차거나 무섭다는 표현을 해오긴 합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이를 제지하거나 심지어 경찰에 신고하는 이조차 전혀 없습니다.

 

아이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제가 터득한 노하우 하나가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더러 "조그만 녀석이 왜 담배 피우냐"는 식의 접근 방법은 십중팔구 이들과의 충돌을 빚게 합니다.  아이들이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을 타이르는 행위 따위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길거리를 방황하는 데엔 그 만한 이유가 분명 있을 테고, 때문에 평소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잔소리와 꾸짖음 속에서 생활해 왔을까를 생각해 볼 때 전혀 이해 못할 상황만은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들이 조용히 물러갈까요?  의외로 간단합니다.  다른 곳에 가서 놀라고 타이를 경우 오히려 미안하다며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절대로 담배를 왜 피우냐 따위의 아이들에게 있어 민감한 사안을 따지고 들면 안 됩니다.  이는 아이들과 언쟁으로 이어져 자칫 경찰서행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습니다.  학습효과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언젠가부터 전 누구보다 비겁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그릇된 행동을 보면서도 후환이 두려워 이를 타이르지 못하고, 그저 저에게 피해만 오지 않으면 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 저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이들의 일탈 문제는 이제 학교에서조차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발 학교 안에서만큼은 담배 피우지 말라며 선생님들이 하소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입니다.  아이들이 이처럼 성인 흉내를 내가며 주변의 눈치 보지 않고 자연스레 일탈 행동을 할 수 있는 배경엔 바로 저와 같이 비겁한 어른들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른으로서 너무도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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