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가짜깁스 열풍 웃프지만 나도 해주고 싶다

새 날 2014. 9. 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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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첫날, 벌써부터 음식 준비에 들어간 아내가 일을 대충 마치고 난 후 부리나케 내게 달려온다.  대뜸 바닥에 엎드리더니 아픈 허리를 주물러 달란다.  이는 명절 때마다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다. 

 

솔직히 나이가 들수록 명절이 전혀 반갑지가 않다.  젊었을 때야 부담감을 느낄 이유가 없으니 그냥 노는 날의 연속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마냥 즐거웠지만, 결혼한 이후로는 해가 거듭될수록 더 큰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게 현실 속의 명절이다. 

 

아울러 의례적이거나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 받으며 명절 때만 얼굴을 빼꼼히 내비치는 인척들 만나는 일도 실은 별로 달갑지 않거니와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연휴 내내 음식 장만에 모든 걸 희생해야만 하는 아내가 너무도 안쓰럽다.  이런 상황에선 흔히들 남편이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유교를 기반으로 한 우리 명절 풍습의 특성상 전반적으로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상황이기에 남편으로서 음식 만드는 일을 살짝 거들거나 일을 하느라 피로에 절은 아내의 몸을 풀어주는 이상의 도움을 주기란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각 가정마다 그 정도야 다를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때문에 요즘엔 이런 근원적인 생각마저 든다.  과연 고유한 전통이라고 하여 온갖 불편함과 괴로움을 감수한 채 무조건 이를 따라야만 하는가 따위 말이다.  뭐 앞서 가신 조상님이나 부모님께서 듣게 된다면 천인공노해 하실 노릇임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닌 걸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우린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과거에 모두들 그렇게 살아오거나 생활해 왔다는 이유로 또 다시 현재를 혹사시켜야 하고, 이는 미래로 이어지며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불편함과 고단함의 명맥을 게속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시류에 안 맞는 전통만을 너무 고집하다 보니 근래 젊은층에게선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보다 현실을 추구하려는 세대다운 발상이다.

 

추석연휴 첫날인 9월 6일 인천국제공항 개항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한국을 빠져나갔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바야흐로 명절 연휴가 해외여행의 극성수기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추세다.  때문에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른다면 세대에 따라 명절을 대하는 태도가 극명히 갈린 채 자칫 원래의 명절 의미마저 점차 퇴색되어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YTN 방송화면 캡쳐

 

근래 매우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접했다.  추석을 앞두고 가짜 깁스가 품절됐다는 소식이다.  연극 및 영화 소품이나 만우절 장난 용도로 제작되고 있는 이 가짜 깁스는 신기하게도 명절이 다가오면 평소에 비해 두배 이상 불티나게 팔리는 상황이란다.  이번 추석엔 지난달 말일께부터 주문이 폭주하더니 이미 품절됐단다.  속된 표현으로 웃픈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가짜깁스 품절 소식을 듣고 있자니 이 제품이 명절 때 어떤 용도로 활용되고 있을까를 떠올리며 처음엔 참 당황스레 여겼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 곰곰 생각해 보니 오죽하면 그럴까 싶어 반대로 측은지심마저 든다.  그만큼 우리 주부들의 명절 증후군이 심각하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명절 때면 고기 절이고, 각종 튀김에, 전 부쳐가며 불 앞에서 한없이 씨름해야 하는 아내를 물리적으로 도와주는 데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물론 이 또한 핑계일 수 있지만 어쨌든 그러하다.  지금 이 시각 이 포스팅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땀 흘려가며 열심히 음식 장만에 열을 올리고 있을 아내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일을 마친 뒤 안마 서비스를 해 주는 정도다.  때문에 솔직히 나도 기회만 된다면 아내의 양쪽 팔 모두에 가짜깁스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아내가 이 마음 이해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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