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어버이' '엄마'란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새 날 2014. 7. 1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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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이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이 찰진 더위 속에서 100리 길을 걷고, 유가족들은 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5일째 단식 농성을 벌여야만 하는, 이 불의와 혼돈의 시대에 자칭 보수라 부르는 단체들이 단식 농성장으로 우루루 몰려와 유가족들과 충돌이 빚어지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몰상식한 일이 벌어졌다.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봉사단' 회원들이 18일 광화문광장 유가족들의 단식농성 현장으로 몰려와 이들을 비하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개최하려다 충돌이 빚어지고 만 것이다. 

 

ⓒ민중의 소리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전히 치유를 받아야 할 피해자들이다.  몸과 마음이 아픈 분들을 보듬고 다독여 주어야 할 책무가 있는 '어버이'와 '엄마'라 불리는 분들이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떻게 이러한 만행을 저지를 수가 있는 걸까?  적어도 직접 어루만져 주며 그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지는 못할지언정 멀리서나마 작은 응원이라도 보태주어야 진정 '어버이'와 '엄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을까?

 

그대들은 유족들이 왜 힘든 마음과 몸을 온전히 추스르지도 못한 채 단식농성에 들어갔는지 정녕 모른단 말인가?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를 통해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개혁과 대변혁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남은 우리들의 의무다.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들을 엄정 처벌하겠다"며 굳게 약속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같은 취지의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심지어 국가개조론을 꺼내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세 달이 훌쩍 지난 지금 진상 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세월호 특별법의 처리는 약속 시한을 훌쩍 넘겼으며, 세월호 국정조사에서는 대통령의 약속과 달리 제대로된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여당과 야당은 당리당략에 매몰된 채 성역 없는 조사는 커녕 시간만을 허비해 왔다.  그러는 사이 유족들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싹을 트더니 어느덧 그들을 비하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그들의 진실 규명 외침을 또 다른 정치공세라고 주장하는 세력들의 목소리가 비등해졌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주체는 아무도 없다.  세월호 유족 비하에 나선 단체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진실 규명에 대해선 미온적이다.  청와대와 여당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그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 규명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 밖인 듯싶으며, 오로지 당 대표 선출이나 7.30 재보궐선거와 같은 정치적 잇속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입장이다.  책임을 져야 할 주체들이 나몰라라 책임을 놓아버리니 그 틈을 비집고 자칭 보수라 부르는 세력들의 활개가 가능해져 오늘날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된 것이며, 결국 이들의 행동 뒤엔 청와대와 정치권의 무책임한 행태가 자리잡고 있는 셈이 아닐 수가 없다.

 

ⓒ머니투데이


한편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봉사단'은 이날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왜곡된 주장을 펼치며 유족들의 순수성을 훼손시키려 시도했다.  세월호 특별법 내용에 포함된 피해자 전원 의사자 지정과 대학 정원 외 특례입학이 그 사례다.  이를 두고 유족들의 무리한 요구라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이는 애초 잘못된 내용이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에는 해당 내용이 없다.  유가족들은 오로지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과 재발방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때문에 그들의 순수한 의도를 왜곡시켜선 안 될 노릇이다.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봉사단'이란 단체 이름은 참 정감이 간다.  이름만으로 본다면 역대급이다.  하지만 하는 행동은 어쩌면 이름과 정 반대로 찌질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덕분에 '어버이'와 '엄마'라는 정겨운 단어마저 왜곡될까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분들, '어버이'와 '엄마'의 이름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반대한다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궤변인 걸까?

 

연륜이 제법 있을 듯한 어르신들이 이들 단체 회원의 대부분인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분들께서 어쩌다가 이런 흉한 꼴을 보이게 된 건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손주뻘이 될 법한, 100리 길을 걸어온 단원고 학생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사회가 아무리 막장으로 치닫는다 해도 우리 어르신들마저 이러한 행태를 보인다는 건 정말 아닌 듯싶다.

 

ⓒ한겨레신문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숨져간 꽃다운 어린 생명들과 그들의 가족을 '어버이'와 '엄마'라는 이름으로 위로하기는커녕 세월호 참사를 거짓 폭력이라 비하하고 있으니, 과연 이들에게 '어버이'와 '엄마'라는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있을까 되묻고 싶다.  진정 '어버이'와 '엄마'의 따뜻한 마음을 지니신 분들이라면 도저히 이럴 순 없을 것 같다.

 

그대들은 앞으로 '보수'라는 단어도, '어버이'와 '엄마'라는 이름도 절대 사용하지 말지어다.  이쯤되면 자격 상실이다.  애초 세월호의 비극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작금의 몰상식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된 건지 조금만 깊이 고뇌해 본다면, 자신들의 행동이 낯부끄러워져야 정상일 법하다.  '어버이'와 '엄마'라는 이름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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