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치'가 실종된 자리에 남은 건 '갈등'뿐

새 날 2014. 7. 1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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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LH공사가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일부를 그룹홈(사회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장애인이나 노숙자 등이 자립할 때까지 소규모 시설에서 공동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제도)으로 사용할 요량으로 사회적 배려대상자들로 이뤄진 신규 입주자들을 입주시키려다 기존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는 언론 기사가 화제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입주 막아선 기존 주민들 참조)

 

그런데 기존 주민들이 신규 입주민들의 이사를 막았던 집단 행동 방식이 다소 극단적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승용차로 줄지어 주차장 입구를 막아 놓은 채 이삿짐 차량의 진입을 원천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들의 행동이 결코 아름답지 않아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과도한 측면마저 엿보인다.  하지만 지극히 이기적인 그들의 모습 뒤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자리하고 있어 이처럼 극단적이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한 그들에게 무조건적인 손가락질을 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른다.

 

ⓒSBS 뉴스화면 캡쳐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아파트값 떨어진다며 집단 행동으로 옮긴 이들의 배려심 부족한 극단의 이기심을 탓할 수는 있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란 게 과연 가능할까?  아울러 우리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 어떠한 행동을 하게될지를 묻는다면 쉽게 답할 사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할 테다.  즉 주차장 입구를 차량으로 막으며 집단 행동을 벌인 그들의 행동엔 과도한 측면이 엿보인다 해도 심정적으로는 전혀 이해 못 할 사안만은 아니라는 의미일 테다. 

 

결국 이러한 갈등을 빚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LH공사와 행정당국의 정치 부재에 답이 있다.  여기서의 '정치'란 통치 행위를 일컫는 협의로서의 '정치'가 아닌,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 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이란 보다 넓은 개념으로서의 그것이다. 



해당 기사에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우리 행정 당국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안들에 대해 통상 은밀하게 일을 추진하려는 경향이 짙다.  관보 게재와 같이 매우 소극적인, 법률적 최소 요건만 갖춘 채 자신들의 할 일을 다했다고 한다.  물론 지독한 이기주의 때문에 애초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라 단정지은 측면도 읽히며, 때문에 최대한 은밀하게 추진하려 한 정황이 엿보이기도 한다. 

 

정작 필요한 시점에서 발휘되어야 할 정치가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 사이의 갈등은 더욱 증폭돼간다.  지난해 9월 불거졌던 성남보호관찰소 이전 사태의 사례에서 보듯 올바른 정치적 해결 없이 일을 처리하려다 보면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의 골만 더욱 깊어지고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 채 결국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번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는 단순히 이번 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봉합되지 않은 사회적 갈등은 더욱 확산돼간다.  해당 기사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여실히 보여준다.

 

 

ⓒ 다음, 네이버 해당 기사 댓글 캡쳐


예상대로 사회적 배려대상자를 타깃삼아 이들을 싸잡아 비하하는 댓글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회적 배려대상자의 '배려'라는 용어 사용을 무색케 하려는 데다가, 더 나아가 아예 이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비쳐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역시나 '배려'란 그저 사전 속에서나 존재하는 용어로 그칠 뿐, 현실 속에서 이를 찾는다는 건 어려운 개념인 걸까?

 

 

ⓒ 다음, 네이버 해당 기사 댓글 캡쳐


이번엔 비난의 화살이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사회적 배려대상자들의 입주를 막은 기존 주민들을 비하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기심을 탓하는 척 하더니 어느 순간 그 비난이 도를 넘어서며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있었다.

 

이러한 개인 간 혹은 사회적 갈등의 깊은 골을 전적으로 개인들의 이기심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오히려 이토록 이기심이 커져만 가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잠복된 채 틈만 나면 빼꼼히 고개를 쳐드는 이념 갈등처럼 경제적 갈등마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데엔 우리 사회에서 실종되어 어느덧 찾아보기 힘들어진 정치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 

 

이해집단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균형을 맞춰야 할 주체들이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사회 요소요소에서의 갈등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갈등 증폭은 언제고 폭발할 수 있는 화약고와 같아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암적 존재라 할 수 있다.  결국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유일한 방법은 가출해버린 정치를 우리에게 되돌아오도록 만드는 일이 돼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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