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가 개조하겠다"며 또 위원회 설치인가?

새 날 2014. 7. 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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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뉴스화면 캡쳐


지난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새로운 화두를 꺼내들었다.  다름 아닌 '국가개조'다.  취임한 지 불과 1년 반 가까이 지난 시점이지만 그동안 대통령은 꽤나 많은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져 주었던 듯싶다.  취임과 동시에 '창조경제'를 꺼내들더니 얼마 후엔 뜬금없이 '통일대박'으로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세월호 참사 국면에선 또 다시 '국가개조' 카드를 꺼내들며 팔색조와 같이 능란한 변신술과 시류에 발빠르게 적응해가는 민첩함마저 보여 주었다.

 

그런데 솔직히 대통령이 직접 만들어내거나 골라낸 이러한 화두의 어감이 그리 썩 좋지만은 않다.  신기하게도 일부러 그러한 단어들만을 추려낸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창조경제'야 뭐 그렇다손쳐도 '통일대박'에 와서는 싼 티 작렬이다.  더군다나 근래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국가개조' '적폐' '암 덩어리' 등의 용어에서는 의미야 둘째치더라도 어감 자체로부터 이미 강한 거부감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말은 쉬운 법, '국가개조'의 길은 예상보다 험난했다.  두 차례의 총리 지명이 물거품이 되며 첫 걸음부터 삐걱거렸다.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곤두박질치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한다.  우여곡절 끝에 정홍원 총리가 유임되긴 했으나 온통 상처뿐이다.  야당으로부터 '빽도총리'란 비아냥마저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오마이뉴스


이렇듯 만신창이가 된 정홍원 국무총리가 8일 '국가개조'와 관련 국무총리 소속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를 구성하여 민관 합동 추진체계를 만들겠노라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위원회 산하에 전문 분과를 두어 공직개혁과 안전혁신, 부패척결, 의식개혁 등 국가 개조를 위한 국민 의견을 수렴, 이를 실행해 나가겠노라고 밝힌 것이다. 

 

물론 총리 스스로가 기획했다기보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물이긴 할 테지만, 이미 세인들의 우스갯감이 돼버린 유임 총리가 추진하는 '국가개조'가 과연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의 '국가개조' 언급 시점부터 무수히 회자되어온 국가개조 주체의 자격 논란 역시 여전하다.  한 마디로 개조되어야 할 대상이 개조 주체가 된다는 사실이 가당키나 하냐는 게 세간의 반응이다. 

 

다소 풍자적이며 과격한(?) 측면이 비치는 대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두 틀린 말로 치부하기엔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엿보이는 게 사실이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국가개조'의 필요성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벌써부터 잊은 건 아닌가 모르겠다.  바로 세월호 참사 때문일 텐데, 이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파행으로 이끌고 있는 주체들이 다름아닌 바로 그대들 아니던가.  이런 상황애서 그대들의 입으로 '국가개조'를 논한다는 건 결국 넌센스 아닐까? 



아울러 그나마도 말 많고 탈 많은 위원회 형식을 빌려 추진하겠다는 발상 또한 어쭙잖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인수위 시점부터 위원회의 최소화를 주장해 왔다.  지난 국민의 정부 때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각종 위원회는 참여정부를 거치며 더욱 증가하게 된다.  결국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이의 폐해를 인정, 2007년 6월 기준 416개의 정부 위원회를 205개로 줄이겠노라고 호언장담했건만, 오히려 사상 최대치인 505개로 늘어난 바 있다.  이쯤되면 '위원회 공화국'이란 비아냥에도 할 말이 없다.

 

위원회의 대표적인 폐해로는 행정 비효율을 꼽을 수 있겠다.  회의조차 열리지 않는 위원회가 부지기수이며, 설사 열린다 해도 형식적인 용도로 그친 경우가 허다하단다.  물론 위원회의 취지는 결코 나쁜 게 아닐 테다.  문제는 그 좋은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운영 방식에 있다.  쓸 데 없는 국가 세금만 축낼 뿐 의견 수렴 창구라는 본연의 임무는 진작부터 퇴색시킨 채 대통령과 기타 관료의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후딱 만들어져 왔던 게 바로 위원회다.  위원회 축소를 공언한 박근혜 정부가 '국가개조'라는 화두 앞에서 오히려 또 다시 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나선 셈이니, 어찌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혹여 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어 활발하게 결과물을 쏟아내고 이를 통해 관료와 우리 사회에 혁신을 권고한다손쳐도 과연 해당 주체들이 이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완전 별개의 문제다.  극명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청와대가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관련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이행계획 통지 의무 회신 기간인 90일을 모두 채우고 나서야 단 두 문장에 불과한 형식적인 이행 계획을 회신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 있다.

 

ⓒ연합뉴스


인류 보편적 가치에 해당하는 인권위의 권고는 청와대의 이렇듯 얕은 인권 의식의 저편 너머로 그냥 조용히 묻혀버린 셈이다.  당시의 권고는 2001년 인권위 설립 이래 대통령을 상대로 한 최초의 것이었던지라 상당한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상대적으로 결과는 더욱 처참했다. 

 

이러한 결과는 무얼 의미하는 걸까?  한 마디로 지키지 않아도 될 권고 따위 그냥 무시하겠노라는 속내를 내비친 셈이다.  국정 컨트롤타워 청와대의 자세가 이럴진대 그 예하 정부의 태도는 보지 않고도 뻔할 뻔자 아니겠는가?  가칭 '국가개조 범국민위원회'가 아무리 좋은 의견을 취합하여 최상의 혁신 내용을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에 권고한다 해도 해당 주체들이 이러한 멘탈로 임할 경우 그 결과는 명약관화한 일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대통령 한 마디에 위원회 조직 하나쯤 뚝딱 만들어지는 일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국가 전체를 인위적으로 개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부터 실수 아니었을까 싶은 부분이다.  물리적인 환경은 뜯어 고쳐 개조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을 지배하고 있는 도덕적 관념이나 사상을 국가가 직접 나서 개조한다는 건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조차 시도하기 힘든 일일진대, 결국 형식에 그칠 개연성이 높다라는 의미이다.  위원회란 보여주기식 행정의 한 양태일 뿐일 테고, 이를 꾸리기 위해 또 다시 혈세가 낭비되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과거처럼 이어질 공산이 역력해 보인다.  실은 진정한 '국가개조'가 이뤄지려면 바로 이러한 보여주기식 일처리부터 과감히 뿌리를 뽑아야 하는 게 우선 순위 아닐까 싶다.

 

국가개조?  가당치도 않은 말이긴 하지만, 또 다른 측면으로 볼 때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먼저 '국가개조'란 황당한 화두부터 거둬들이고,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부터 바르고 정의롭게 행동한다면, 윗물이 맑아질 경우 자연스레 아랫물이 맑아지는 것과 같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그 움직임과 분위기가 고루 확산될 게 틀림없다.

 

국민을 개조의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대통령의 생각이 영 마뜩지가 않다.  마치 못난 국민을 잘난 정부와 대통령이 뜯어 고치겠다는 발상과 같은지라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진정 이 나라의 개조를 바란다면, '국가개조'와 같은 끔찍한(?) 단어의 남발부터 근절시키는 게 최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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