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맥주 소비자는 호갱님? 여전한 생맥주잔의 꼼수

새 날 2014. 7. 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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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벌써부터 맹위를 떨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연신 흐르는 땀방울을 주체하기가 힘이 든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이 그리워질 법한 계절이다.  초저녁부터 거리를 환하게 비추는 호프집 조명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탁자, 거기엔 퇴근길에 한 잔씩 걸치려는 사람들로 즐비하다.  필시 대목인 게다. 

 

하지만 이런 계절적 변화와는 무관하게 요즘 우리 맥주 업계가 비상이란다.  전운마저 감지될 정도다.  수입맥주의 파상공세가 만만찮다.  단 한 차례라도 수입맥주를 맛본 소비자들에 의해 재차 구매가 이뤄지며 매출 비중이 점차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형마트와 맥주 유통업체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맥주 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어 이들의 가격이 과거에 비해 꽤나 착해졌다는 부분도 수입맥주 부흥에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JTBC 방송화면 캡쳐


그렇다면 구체적인 수입맥주의 성장세는 어느 정도일까?  2년전까지만 해도 전체 맥주 매출의 3%에 불과하던 것이 매년 두 배씩 성장하더니 어느새 10%의 고지를 찍었다.  국내 맥주 수입량이 10년새 무려 7배 가까이 중가한 것이다.  이 또한 지난해를 기준으로 한 통계이기에 성장세가 두드러지며 월드컵 특수마저 겹쳤던 올해를 기준으로 본다면, 더욱 늘어났으리라 예상되는 부분이다.

 

ⓒJTBC 방송화면 캡쳐


맥주 제조사들로선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겠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선 마냥 반겨할 만한 일이다.  국산맥주만을 마시다가 외국산 맥주를 접하게 되면 그 독특한 향과 부드러운 목넘김 그리고 깔끔한 뒤끝에 놀라 이후에도 자꾸만 손이 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종류가 다양해 골라 마시는 재미마저 선사해 주고 있는데, 거기에 가격까지 저렴해지니 금상첨화다.  이 어찌 반갑지 않을소냐.

 

 

오비맥주와 하이트맥주가 양분한 채 과점 형태로 운영돼온 한국 맥주시장의 폐해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지난 2012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다니엘 튜더 기자가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고 싱겁다"여 우리 맥주의 맛에 대해 돌직구를 날려 개성 없는 맛 논란에 불을 지폈던 적이 있다. 

 

ⓒ서울경제


하지만 맥주시장의 과점에 따른 가장 대표적인 후광 효과(?)의 결과물은 아마도 맥주에 붙여진 가격이 아닐까 싶다.  이미지 속의 영수증을 통해 보듯 개성없는 맥주 맛만큼이나 어쩌면 하나 같이 똑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신통방통하기만 할 따름이다.  출고가의 52%가 세금이고 나머지는 포장재, 내용물, 생산설비 비용이기 때문에 모든 맥주회사의 가격이 엇비슷해졌을 것이라는 맥주회사의 궁색한 설명이 비록 사실일지라도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담합의 정황마저 엿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과점 형태의 맥주시장에 유통 공룡 '롯데'가 가세했다.  조만간 판도가 크게 바뀔 기세다.  일대 거대한 균열이 생기며 점유율을 둘러싼 치열한 '맥주 전쟁'이 시작될 조짐이다.  기존 업체들도 이에 질세라 에일 타입 등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기존 제품을 리뉴얼하는 등의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울러 수입맥주를 통해 보다 다양해진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프리미엄 맥주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는 추세다.

 

맥주시장을 꽉 움켜쥔 채 쥐락펴락하고 있던 족쇄와 빗장이 풀리며 수입맥주의 파상공세가 시작되고 동시에 촉발된 맥주 전쟁은 소비자들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높아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과연 어떤 방식으로 맥주 회사들이 만족시켜 줄 것인지 벌써부터 한껏 기대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맥주 시장의 대 격변을 바라보다가 문득 잊고 지냈던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다름 아닌 지난 2012년말 언론을 통해 보도됐던 이른바 '생맥주잔의 비밀'과 관련한 사항이다.  우리가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주문해 마시다 보면 일반적인 주문 단위인 500, 1000, 2000cc 등의 맥주잔 용량에 대해 누구나 한 번 쯤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있을 텐데, 특히 피처라 불리는 큰 잔일수록 더더욱 미심쩍다, 당시 보도 내용에 따르면 실제 업소들이 고객이 주문하는 양보다 최대 23% 적게 담아 내놓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어 술꾼들을 공분케 했었다. (맥주잔의 비밀? 술꾼들이여 대동단결하라 포스팅 참조)

 

ⓒ연합뉴스

 

이는 소비자원이 강남역 등 서울 6개 지역 90개 호프집의 생맥주 실제 제공량을 측정하여 얻은 결과물이다.  소비자원이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생맥주 주문량과 실제 제공량의 차이를 개선토록 맥주와 외식업계에 촉구하자 맥주 제조사들은 2013년부터 눈금이 새겨진 생맥주 잔을 자체 보급하기로 굳게 약속한 바 있다.

 

엇그제 들른 모 호프집의 생맥주잔


그렇다면 이 약속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이를 확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내가 확인에 나섰다.  난 이를 위해 서울 시내 곳곳의 호프집과 치킨집을 제집 드나들듯 이용해야 했다.  물론 반은 농담 반은 진담이다.  왜냐면 실제 호프집을 수 차례 이용한 건 사실이지만, 주로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생맥주잔의 비밀'이 밝혀진 이래 수도 없이 호프집을 가보았건만, 안타깝게도 난 이전의 맥주잔과 달라진 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금이 매겨진 맥주잔은 없었다.  소비자원은 당시 관련업계에 이렇게 권고한 바 있다. 

 

"맥줏집에서 사용하는 생맥주 잔은 소비자가 정량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용량 선을 명확히 표시해 제공할 필요가 있다.  판매업소는 용량 선이 표시된 생맥주 잔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정확한 제공량이 표기된 메뉴판을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신제품 개발을 통해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킨다며 노력하면 뭐하나.  이러한 노력들은 결국 제 살 궁리밖에 더 되겠는가?  진정 소비자를 위하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는데?  생맥주잔과 같이 눈에 잘 띠지는 않지만, 소비자를 생각하는 마음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이렇듯 세심한 부분에 마케팅 능력을 집중해야 함이 옳지 않을까?  더군다나 스스로가 한 약속인데? 

 

소비자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차버리는 회사들이 최근 소비자들을 향해 연신 러브콜을 보내오는 수입맥주와의 경쟁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소비자는 사소한 약속이라 해도 이를 제대로 이행할 줄 아는 회사를 신뢰하며,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감동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테다. 

 

맥주회사들이여, 소비자 기만하는 꼼수짓 그만하고 소비자원의 권고와 스스로의 약속을 이제라도 이행하시라.  그런데 웃긴 건 생맥주잔의 꼼수가 모든 맥주회사들로부터 똑같은 패턴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아 하니 마치 가격 담합하듯 이마저도 서로 담합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엿보인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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