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어머.. 아이스크림 가격이 왜 이래?

새 날 2014. 6. 1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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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하신 어머님, 다른 물품도 그렇지만 특히 아이스크림 류는 절대 제값 주고 사오시는 법이 없다.  동네 마트나 수퍼가 새로 오픈할 때면 집집마다 오픈 행사 전단지가 한 장씩 들어오는데, 매번 이 녀석들을 꼼꼼히 살피신 뒤 새로이 문 여는 곳마다 쫓아다니시는 게 우리 엄니의 또 다른 일상 중 하나다.

 

노구를 자전거에 의지한 채 동네를 아슬아슬 돌아다니시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긴 한데, 당신께선 이를 즐기신다.  아들 녀석이 변변치 못하니 아이스크림조차 제값 주고 마음대로 못 사먹는 형편이 돼버린 것 같아 너무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며칠 전 집 바로 앞 마트에 들렀더니, 아이스크림 세일 문구가 적혀있는 게 아닌가.  이곳에선 평소 세일을 잘 하지 않기에 특별히 눈에 띠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막대형 아이스크림이 무려 5개에 1,950원, 좋지 않은 머리지만 그래도 그 안에선 나름 초고속 셈이 이뤄지고 있었다.  옳아, 이 가격이면 한 개에 200원 꼴이구나.  함께 있던 집사람도 "정말 싸네, 이런 건 무조건 사야해" 라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물론 나중에 벌어질 참극을 생각한다면 마치 덤 앤 더머와 같이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한 쌍의 멍청한 바퀴벌레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다. 

 

어머님께 이 같은 사실을 슬쩍 귀띔해 드렸다.  어제, 그러니까 일요일 아침, 그곳에서 수십개의 아이스크림을 사오신 어머님께서 가격이 이상하다며 영수증을 꺼내 보이신다.  집사람이 이를 받아들며 개당 가격을 계산해 보니 정말로 알고 있던 가격과 크게 차이가 났던 모양이다.  그 뒤로 어머님과 대화가 좀 더 이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아침식사 시간이 되어 식탁으로 자리를 옮기던 난 궁금하던 차에 집사람에게 슬쩍 물었다.  "왜?  아이스크림을 잘못 사셨대?"  그랬더니 집사람이 대뜸 내게 묻는다.  "아이스크림이 한 개에 얼마라고 했어?"  난 의기양양하게 "물론 5개에 1,950원이니 개당 200원도 안 되는 꼴이잖아" 라고 했다.

 

 

어이가 없다는 듯 집사람이 말한다.  "정말 개당 200원인가 다시 한 번 계산해 봐"  난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싶어 별 대수롭지 않게 듣고 있었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에 다시 한 번 계산을 시도해 본다.  헐.. 개당 200원이 아닌 400원 꼴이었다.  우째 이런 일이..   처음 계산했던 사람의 말만 믿은 채 무려 세 사람이 합리적 의심도 없이 그냥 믿고 행동에 옮긴 게 아닌가.  아니 어떻게 이런 결과가 생길 수 있는 걸까?

 

이유를 곰곰이 따져 보았다.  우선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경험칙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어머님께선 새로 오픈하는 점포에서 일종의 미끼 상품으로 깔아놓은 80% 할인 아이스크림을 주로 사오셨다.  시중에서 1,000원 하던 막대 아이스크림은 200원, 그리고 2,000원짜리 콘 류는 400원에 구입해 오셨던 셈이다.  그러니 내 머릿속엔 이러한 상황이 각인돼 있던 터라 앞 숫자가 '1'이라는 사실에 혹해 별 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집사람도 공범이다.  :)

 

2,000원과 1,950원, 실은 고작 50원의 차이라 해도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실제보다 훨씬 크게 와 닿는 법이다.  이렇듯 불과 몇십원 내지 몇백원의 차이를 이용, 정가의 맨 앞 자리 숫자를 한 단계 내려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방식은 흔히 사용되는 마케팅 기법 중 하나다.  10만원 짜리 상품을 99.900원에 판매하면 누구나 혹하기 마련이다.  결국 경험칙과 업체의 숫자놀음에 의한 착시 현상이 맞물리며 이뤄진 결과였으며, 거기에 가족간의 믿음마저 어우러지니 의심 같은 따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아예 없었던 게다. 

 

너무도 어이가 없던 난 모른 척 어머님께 슬쩍 여쭤 보았다.  "어머님, 아이스크림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면서요?"  어머님께선 황당하시다는 듯 "나도 몰라, 다음부턴 거기서 못 사먹겠다" 라며 정색을 하신다. 

 

에고~  이런 상황에서 어찌 뜨끔하지 않을 수 있겠나.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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