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미국산 쇠고기 단상

새 날 2014. 3. 3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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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육류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편이야.  특히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 이후 쇠고기는 더더욱 멀리하게 됐지.  물론 광우병 파동의 여파로 인해 국산 한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며, 쇠고기 자체가 우리 같은 서민이 사먹기엔 너무 먼 당신이 돼버린 탓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어쨌거나 미국산 쇠고기 만큼은 웬만하면 피하자는 주의야.  왜 그리 까탈스럽게 구냐고?  내가 원래 좀 쫌스러워서 그래, 잘난 너희들이 이해해야지, 안 그러면 어쩌겠니?  뒤에서 덧붙이긴 하겠지만, 이런 현상이 비단 광우병 탓만은 아닌 거야. 

 

그런데 어제 저녁엔 꽤나 곤란한 일이 벌어졌지.  어머니께서 호주산 쇠고기를 맛있게 요리하는 식당이 있다고 하여 온 가족이 모처럼 외식을 하게 됐어.  초대형 간판과 넓고 깨끗한 초현대식의 식당 안엔 이미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바글거렸어.  대부분이 가족 단위의 손님이었고, 연령층 또한 무척 다양했지. 

 

4인분 단위로 주문할 경우 4인분을 더 얹어주어 무려 8인분 어치를 먹을 수 있게 한 파격적인 조건이라 그런 듯싶어.  그런데..  혹시나 하여 메뉴판을 유심히 훑어보던 내게 딱 뜨인 글귀 하나..  원산지 미국산..

 

 

도무지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함께하는 자리인지라 싫다는 걸 내색할 수도 없잖아.  결국 8인분이나 되는 고기를 꾸역꾸역 모두 먹어치우고 말았지.  어머니께선 지난 2008년 이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알러지를 보여온 나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눈치셨어.  해가 꽤나 지났으니 희석될 만도 하지 싶다는 생각을 하셨는지도 모를 일이지. 

 

이 대목에서 광우병 파동 당시의 일화 하나가 떠오르네.  물론 유쾌하지도 않으며 별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얘기야.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열렬한 지지자이신 아버지께서, 참고로 최근엔 TV조선의 광팬이 되셔서 그들의 왜곡된 이데올로기에 적극 동조하고 계심, 광우병 사태로 인해 미국산 쇠고기가 외면받는 꼴을 보다 못하셨는지, 아님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이 불쌍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어느날인가는 이를 왕창 사와 가족들에게 강제로 먹이려고 하셨던...ㅠㅠ

 

ⓒ뉴시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어.  거창하게 동물 복지 따위의 얘기는 꺼내고 싶지도 않아.  어차피 식용을 위해 낳고 길러지는 순간부터 동물들에게 있어 복지란 사치이자 우주 밖 얘기 밖에 더 되겠어?  다만, 자연성을 상실한 채 최악의 환경 속에서 인위적으로 길러진 동물들로부터 얻은 고기가 우리네 체내 소화기관을 거쳐가는 동안 과연 어떤 종류의 미묘한 변화를 불러오게 될지 두렵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좁은 공간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무척이나 효율적으로(?) 길러진 미국의 육우들 덕분에 우리나라에 대량으로 값싸게 공급되어 지방질과 단백질의 보충을 원하는 이들의 허기진 배를 가득 채울 수 있게 된 노릇 아니겠어?  우린 이를 고마워하며 그저 달갑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만인 걸까?

 

가뜩이나 GMO 식품류들과 AI 등 바이러스의 공습으로 인해 우리의 식탁은 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 효율성 하나만을 위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채 마치 공장에서 공산품 찍어내듯 마구잡이로 생산해내는 육류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 몸에 해악을 끼칠 개연성이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  광우병 또한 채식 본위로 태어난 소에게 인위적으로 육식을 강요하여 벌어진 참사 아니겠어?

 

하지만 이러한 모든 사실보다 나를 가장 안타깝게 했던 건 바로 어제 먹었던 미국산 쇠고기의 맛이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았다는 부분이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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