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나이듦에 대해

새 날 2014. 3. 3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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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된 게 엇그제 같은데 어느덧 한 분기가 모두 끝나간다.  뭐가 이리도 빠른 걸까. 

 

아직 한 분기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웬 호들갑이냐고?  그렇다면 곰곰이 생각해 봐봐.  지난 한 해가 얼마나 덧없이 흘러갔는가를..  물론 지극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추고 있거나 세월의 흐름에 둔감해도 될 만한 사람이라면 조금은 달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해.

 

하지만 난 달라.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의 체감속도가 더욱 빨라진다더니 실제로 그런 느낌이 강하게 와 닿고 있거든.  최근 2-3년간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휙휙 지나쳐버린 시간 덕분에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어.  이러한 원리를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던 철학자들의 고뇌가 충분히 이해될 만큼 울트라 초고속이었던 것만은 틀림없거든.

 

그들은 전체 삶에서 차지하는 1년의 비중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차 줄어들기에 세월의 체감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라 보이거나, 보다 극단적인 표현으로는 해가 갈수록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가며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인지하게 된다고 했어.  철학자들, 제법 그럴싸하지?

 

서울엔 벌써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어

 

그렇다면 아이들의 커나가는 모습이나 물리적인 나이 말고 불현듯 자신의 나이에 따른 무게감이 묵직하게 느껴질 때는 언제쯤일까?  대중매체에서 흘러나오는 인기가요들이 언젠가부터 낯설게 와 닿거나 심드렁해진 경우?  온통 10대 20대 젊은 계층 위주로 편성된 방송 프로그램을 보며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  아니 그렇지 않을 걸.  실상 이런 따위는 별게 아닌 거였어.  갈수록 워낙 선정성 위주로 치닫는 방송사들의 삐딱한 행태가 문제인 게지, 그러한 유행이나 트렌드를 제대로 읽고 좇지 못한다고 하여 우리 같은 이들을 탓한다는 건 우스운 일 아니겠어?

 

난 젊은이들과 섞여있을 때조차 누가 뭐라든 뚝심있게 그들과 늘 같은 부류라 여겨왔는데, 물론 이는 나만의 지나친 착각임엔 틀림없어, 최근엔 은근히 거리감이 느껴져.  청춘의 얼굴이란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환한 데다가 빛마저 발하고 있잖아.  그에 비해 세월의 무게감과 중력을 이기지 못해 상대적으로 우거지상이 돼 쪼그라든 듯 한껏 칙칙해진 나의 외모는 자신감을 상실해가며, 점차 그들로부터 자연스런 괴리감을 연출해내고 있던 거였어.  그래, 또 한 계단 올라선 느낌이구나.



가끔 중장년 이상의 어른들을 보노라면 하나 같이 칙칙하고 디자인도 영 별로인 옷을 입고 있길래 왜 그럴까 궁금해하던 차였는데, 이 궁금증 또한 직접 나이듦을 경험하며 금방 해소됐지 뭐야.  아무리 나이가 많다고 한들 예쁘고 화사한 옷을 입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  하지만 이젠 빛이 나지 않고 초라해진 외모 탓에 뭘 입어도 어울리지 않게 된 거야. 

 

자연스레 칙칙한 무채색의 옷으로 손길이 갈 수밖에...  그도 아니라면 그저 등산복 류의 아웃도어 복장 하나로 1년을 버텨내던가...  아마도 이 둘 중 하나겠지.

 

얼마전 나이를 먹어갈수룩 더 행복해지는 이유를 외국의 모 연구기관이 분석하여 발표한 바 있어.  나이가 많은 건 그 만큼 경험이 풍부하다는 의미이기에 젊은 계층에서나 느낄 법한 불꽃 튀는 화끈함과 같은 새로운 경험치들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줄어드는 반면, 일상의 작은 것들로부터 얻는 소소한 기쁨에서 오는 행복감이 크기 때문이란거야.  그런데 이게 과연 사실일까?  나이들어가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전형적인 수사적 표현 아닐까?  물론 갖은 경험으로 인해 과거에 비해 사소한 충격 따위엔 다소 둔감해지는 경향이 있긴 하다만...

 

그러나 난 여전히 배가 고프다 못해 허기가 져.  젊은 계층 못지 않게 새로움이나 가슴 두근거림과 같은 기대 내지 흥분으로부터의 행복감을 느끼고 싶단 말야.  몸은 자꾸만 늙어가는데, 한없이 가벼운 마음만은 여전히 철없는 아이와 다름없는 거야.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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