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의 날선 설렘

맛조개 캐러 갔다가 동죽만 한 가득

새 날 2014. 6. 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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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로 유명한 서천에 당도했다.  선거날이자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교통이 그리 막히진 않았다.  덕분에 예정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어서 주변 풍광을 조금은 감상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괜히 주변을 어슬렁거려본다.

 

 

연못엔 연잎이 가득 했고, 미끈하게 빠진 오리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우측으로 보이는 나무는 화이트핑크 셀릭스라는 녀석인데, 연중 세 가지 색상으로 잎이 변하는 신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단다.  지금은 6월이라 흰색이라는군. 

 

 

각기 사연이 있는 옹기들이 한데 모여 있다.  과거 천주교 박해 당시 신자들이 오지에 숨어 몰래 만들어낸 귀한 녀석부터 네모낳게 생긴 녀석까지 무척이나 다양했다.

 

 

연못 한 가운데에 놓인 다리를 그냥 지나칠 순 없잖은가?  그러고 보니 전날 비가 참 많이 왔다.  그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빗물이 흩어지지 않은 채 연잎 위로 또그르르 한데 모여 있더군.  물에 젖지 않는다는 연잎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아니겠어?

 

 

여기저기 빗물의 흔적이...  이제 장소를 옮겨볼까?  오늘의 점심식사는 칼국수인데, 모시가 들어있는 반죽을 이용해 직접 면을 만들고 바지락 등을 넣어 미리 우려낸 국물과 함께 끓여먹는 일종의 체험 행사다.

 

 

모시반죽을 도마에 올리기 전 밀가루를 깔아준다.

 

 

물론 반죽 자체에도 밀가루를 고루 발라 주어야 한다.  왜 이리 해야 하는지 쯤은 말 안해도 다들 알잖아?

 

 

방망이로 눌러 쭉쭉 늘인 다음 이미지처럼 접는다.  이제 칼로 잘라내야 할 시간.

 

 

칼로 예쁘게 썬다.  너무 두꺼워도 얇아도 안 된단다.  적당한 두께로 잘라내는 게 포인트야. 

 

"자 나는 떡을 썰 테니 석봉이 너는 글씨를 쓰거라"  이 상황에서 왜 이게 생각나는 걸까?

 

 

마눌님의 날렵한 칼 솜씨가 빛을 발하고 있다.  나도 썰어 보았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확실히 숙달된 조교의 솜씨가 월등히 낫더라는...

 

 

이렇게 만들어진 면발을 삶아 바지락 등으로 미리 우려낸 국물과 곁들여 한 그릇의 칼국수가 완성됐다.  맛?  물론 끝내 준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국수는 반죽이 생명일 텐데,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지라 쫀득쫀득 씹는 맛이 일품이다.  더군다나 서천의 특산물인 모시가 들어 있어 칼슘 성분 가득한 영양식이기도 하다.

 

 

점심식사도 든든히 마쳤겠다 물때도 되었겠다 오늘의 메인인 맛조개 캐기 체험을 위해 장소를 옮긴다.  '월하성'이란 곳인데, 이름이 너무 예쁘지 않은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뻘의 형태가 아닌 모래 성분으로 돼있어 이동하기가 수월, 나의 발님께서 아주 호강하셨다.

 

 

오늘 나의 주무기는 삽이며, 따라서 발휘할 신공은 삽질이 되겠다.  아직 물이 덜 빠진 곳이라 완전히 빠진 곳으로 이동하고자 한다.

 

 

광활하다.  지나가며 보니 발에 채이는 게 죄다 조개류였다.  종패를 쫘악 뿌려놓은 모양이다.

 

 

삽질 한 번만 해도 조개가 한 주먹씩 나오는 상황이다.  그냥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  다만 정작 캐려 한 맛조개는 당췌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희소성에 목말라 하는 이 무지몽매한 인간은 그저 본능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래서 물이 완전히 빠진 곳으로 멀찍이 이동하여 본격 맛조개 잡이에 나섰다.  물론 '본격'이란 말을 무색케 할 만큼 맛조개 잡는 일이란 쉽지가 않았다.  삽으로 뻘을 몇 차례 들춰내면 숨구멍이 보이는데, 그중 돼지코 모양의 두 개짜리 구멍이 맛조개의 것이란다.  하나짜리 구멍은 가짜라더군.

 

몇 차례의 삽질 후 의심스런 숨구멍에 소금을 뿌려본다.  미동조차 없다.  더군다나 돼지코 모양의 숨구멍은 도무지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조금 큰 구멍이라면 일단 소금을 투척해본다.  인고의 시간 흐름 끝에 드디어 내게도 소식이 왔다.  맛조개란 녀석이 빼꼼히 고개를 쳐든 것이다.  이때다 싶어 손으로 잡아채 잠깐 서로간의 힘겨루기 끝에 들어 올린다.  인증샷은 생략한다.  내 카메라가 방수도 아닌데다 뻘로 인해 손이 엉망이기 때문이다.

 

처음 잡기가 어려워 그렇지 이후론 요령이 생겨 점차 캐는 속도에 가속이 붙기 시작한다.  이젠 숨구멍 모양만 봐도 이게 맛조개 녀석인지 아닌지 제법 정확히 맞출 정도로 숙련이 됐다.  그런데 항상 그렇듯 이제 익숙해질만 하니 물때가 다되어 밀물 들어올 시간이란다.  어이없다.  자리를 떠야 할 상황이다.

 

 

이렇게 하여 뻘 밖으로 나온 우리 일행이 이날 잡은 것들을 한데 모아보았다.  결국 이날 잡아올린 건 대부분 동죽이라 불리는 조개 천지였고, 맛조개는 그냥 구색 맞춤할 정도로 그 수가 초라했다.  맛조개 캐러 와 놓고선 정작 동죽 조개만 잔뜩 캐온 꼴이 되었지 뭐야.  :)

 

며칠동안 집에선 조개잔치가 벌어졌다.  오늘 아침식사는 맛조개 된장찌개다.  조개탕에 무침에 찌개에, 조개잔치라 하기엔 종류가 무척 단촐해서 그렇지 정말 원없이 먹고 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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