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정황근거만으로 '북한 무인기' 지목한 허술한 국방부

새 날 2014. 4. 1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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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11일 경기도 파주, 인천시 백령도, 강원도 삼척에서 잇따라 발견된 3대의 소형 무인기에 대해 북한제가 확실하며, 따라서 북한 소행임이 명백하다는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무인기가 발견된 이후 줄곧 '북한제 추정'이란 용어를 사용해오더니, 이번 발표를 기점으로 '추정' 꼬리표를 공식적으로 떼버리게 된 셈이다. 

 

ⓒYTN 뉴스속보 캡처

 

그렇다면 국방부가 이날 발표한 무인기가 북한제와 북한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를 한 번 거들떠 보자.  

 

첫째, 파주 무인기의 경우 북쪽에서 날아와 청와대 등 서울 상공을 촬영한 후 다시 북쪽으로 향했고, 백령도 무인기는 대청도와 소청도 등 군사시설이 밀집된 곳을 촬영했다. 

 

둘째, 1톤 크기의 동체와 엔진 배기량 그리고 촬영된 사진으로 추정컨대 항소거리가 대략 180km-300km 정도이며, 당시 기상조건과 왕복거리 등을 감안할 때 주변국에서의 발진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판단이다.

 

셋째, 무인기의 위장도색이 북한의 2012년 김일성 생일 사열식 방송과 2013년 김정은의 모 군부대 방문 보도사진에서 공개됐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넷째, 국내 민간 무인기 내지 우리 군의 UAV 형태와는 전혀 다르다.

 

다섯째, 무인기를 이륙시키기 위해선 발사대와 추가적인 장비가 필요한데, 무인기의 비행 경로로 추정되는 지역에선 그런 목격자나 신고자가 없었다.

 

여섯째, 지문 감식 결과, 파주와 백령도 무인기에서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지문이 각각 6개씩 발견됐다.

 

하지만 국방부의 요란한 발표와는 달리 결정적 증거는 결국 없었다.  오히려 국방부가 내세운 근거 치고는 허술하기가 짝이 없다.  확고한 증거 없이 그저 정황만을 근거로 무인기가 북한제이며, 때문에 북한의 소행이 확실하다고 단정짓고 있는 셈이다.  의구심을 유발시켜왔던 역대 사건들에서 보듯 이번 건 역시 일단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지은 채 거꾸로 결과를 거기에 꿰어맞추듯 무조건 북한을 향해 수렴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분석 능력 수준과 결과만으로 북한 소행이 명백하다고 공개하기엔 너무 무책임하며 섣부른 감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방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의 직접 조사 결과가 과연 맞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기실 저 정도의 정황을 근거로 추정하는 건 아마추어라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발진 지점이 어디인지 명확히 알 수 있는 비행경로 데이터는 정작 추출하지도 못한 채, 제조와 조작이 북한이라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 또한 전혀 없이, 온갖 추측성 결과만을 쏟아내놓고 있었다.  국방부 역시 이를 의식한 때문인지 추가 분석을 위해 한미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과학조사전담팀을 편성, 운영하겠다는 뻔한 대답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엉성한 발표를 중간에 얼렁뚱땅 하기보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면밀한 분석이 끝난 후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때까지 발표를 늦췄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때문에 국방부가 굳이 속보 형태로 호들갑을 떨며 내보내야 할 만큼 급박한 속내라도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또 다른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무인기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국방부의 대공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온갖 질책과 뭇매에서 자유롭지 못한 성황이고, 더군다나 북한 소행으로 추정된다면서 핵탄두 투하와 같은 근거 부족한 발언들을 쏟아내 전문가들로부터 의문을 제기받게 되자 신뢰에 크나 큰 타격을 입은 국방부다.  결국 이번 중간 발표는 국방부의 무능함에 대한 질책을 스스로 모면해보고자 짜낸 묘안이었음직한데, 결과적으로는 하지 않음만 못하게 된 듯싶다.

 

우리만의 여건상 북한이 의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명확한 근거나 증거 없이 정황 근거만으로 속보를 남발해가면서까지 북한 소행이 확실하다고 발표하는 건 섣부른 행위임엔 틀림없다.  게다가 6.4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민감한 시기이기에 또 다시 북풍 공작 카드를 꺼내든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하고도 남지 않겠는가?

 

이렇듯 어설픈 결과 발표는 결국 국방부 스스로 신뢰를 걷어차는 꼴 아닌가 싶다.  앞서 천안함 사태에서 보았듯 정부의 설익은 발표와 속보 남발은 쓸 데 없는 논쟁과 국론 분열만을 야기시킬 뿐이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의 국방과 안보와 관련한 문제에 있어선 좀 더 명확하고 확실하며,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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