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낳은 희극

새 날 2014. 4. 9.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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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여고에서 실시한 동성애 설문조사가 뒤늦게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해당 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의 전언에 따르면 설문지를 통해 동성애자를 골라낸 뒤 교사가 이들을 불러 진술서를 쓰게 하고 벌을 세웠단다.  심지어 선배들은 정학을 당한 경우도 있거니와 부모님을 모셔오라거나 생활기록부에 기재한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단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모 여고 설문 조사의 반인권적 행태

 

그렇다면 해당 설문지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일까.  우선 이부터 살펴보자.

 

ⓒ머니투데이

 

다른 문항은 그렇다 쳐도 4번과 5번은 매우 심각해 보인다.  동성애 학생을 마치 범죄자라도 되는 양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웬 뜬금없는 학교봉사에 무기정학.. 심지어 퇴학 처분까지?

 

게다가 동성애하는 친구나 선후배가 있을 경우 그들의 실명까지 모두 기재하라는 종용 내지 압박마저 서슴지않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의 인권이란 교과서 속 활자 형태로만 존재하는가 보다.  이 설문이 진정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게 맞는 걸까?  마치 경찰서에서 피의자 신문 조서 꾸미는 것과 진배 없지 않은가.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을 이유로, 교내에서의 반인권적 행태를 통해 성 소수자들을 걸러내고, 다수자로부터 이들을 영원히 격리시키려는 속내를 내비친 듯하여 심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동성애는 틀린 것이며 나쁜 행위?

 

그렇다면 동성애란 과연 나쁜 행위이고, 배척해야 할 대상임이 분명한 걸까?  동성의 상대에게 감정적, 사회적, 성적인 이끌림을 통상 동성애라 하는데, 이는 호르몬의 부조화나 성 정체성을 결정하는 유전자 등의 생물학적 요인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중 정설로 밝혀진 바 없다는 건 여전한 함정이다. 

 

아울러 성 정체성이란, 성별에 대한 내면적인 자아의식으로서 남성, 여성 또는 그밖에 제3의 성별이라고 느끼는 내면적인 의식을 뜻하며, 태어날 때 결정된 성과 반드시 일치하라는 법 역시 없단다. 



때문에 동성애란 틀린 게 아닌, 남과는 조금 다른 그러한 성격의 것이 되어야 결국 맞는 셈이다.  보다 쉬운 예를 들자면, 대다수가 오른손잡이이지만 약 10% 정도는 여전히 왼손잡이인 경우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동성애에 대해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보는 것은 다수의 오른손잡이가 소수의 왼손잡이 더러 당신은 잘못된 것이며 틀렸다고 손가락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다양성 존중을 설파해야 할 학교에서마저 이렇듯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으니,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훗날 기성세대가 된다면 우리 사회에 또 어떤 영향을 미쳐올까.  사회 구성원 서로간 다양성을 존중 받아야 마땅할 텐데 이게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립국어원 '사랑' 사전적 정의 다시 바꿔

 

동성애와 관련한 차별은 비단 이번 일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사랑'이란 사전적 정의를 남녀 관계로만 한정해 성 소수자가 차별받고 인권이 무시된다며 일각에서 이의 개정을 요구한 바 있고, 국립국어원이 이를 받아들이며 사랑의 대상을 '이성 상대'가 아닌 '어떤 상대'로 바꾼 바 있다. 

 

국립국어원 국어대사전 사이트의 '사랑' 검색 결과 화면

 

하지만 불과 2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국립국어원은 '사랑'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또 다시 바꿨다.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결국 '어떤 상대'에서 이성간인 '남녀'로 되돌아간 것이다.  2012년 개정 이후 동성애 반대론자들은 '어떤 상대'가 동성애를 옹호한다며 갖은 항의와 시위를 이어온 바 있다.  결국 국립국어원이 이들에게 굴복하며 백기를 든 셈이다.

 

'어떤 상대'라는 용어 안에 동성애 옹호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반대론자들의 억지도 우습지만, '사랑'의 대상을 남녀간의 그것으로만 한정지은 국립국어원의 모양새는 더욱 우습다.  '사랑'이 어찌하여 남녀간에만 이뤄질 수 있는 걸까?  성 정체성에서도 언급됐듯 남과 여 외에 제3의 성별과도 이뤄질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최근 SNS서비스업체 페이스북은 회원 개인정보에 남과 여 말고 제3의 성별도 넣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한 바 있다.  시대적 조류가 이럴진대, 어찌하여 우리 국립국어원은 포괄적인 개념으로서의 '사랑'을 오히려 남녀간의 '사랑'으로만 국한시킨 채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자신들이 싫어하는 대상이라고 하여 이를 표현 안 하면, 그 대상이 없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우리 헌법 제10조 및 11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조항에 위배된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적대적 행위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음은 결국 국가가 그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등급 재심사 판정, 추락하는 우리의 인권 위상

 

물론 너무도 뻔한 결과지만, 이렇듯 성 소수자의 인권이 바닥으로 내쳐지고 있는 상황은 고스란히 국가의 위상 하락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20여개국의 인권기구 연합체인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로부터 '등급 재심사'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일종의 등급 보류인 셈이다.

 

 

2004년 ICC에 가입한 이후 두 차례의 심사에서 모두 'A등급'을 받았던 우리 인권위가 재심사 판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를 거쳐오며 인권이란 개념을 남의 일인 양 내팽개친 채 끝모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더니, 결국 국가적인 망신까지 초래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허구헌날 국격을 외치더니 스스로 국격을 좀먹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그동안  현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기는 커녕 극심한 권력 눈치보기에만 급급했던 인권위의 취약한 독립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다수와 다르다는 것이 결코 '틀림'은 아닐 것이며, 개인적 차이와는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가 바로 인권일 테다.  이성애가 다수이고 동성애는 소수라고 하여 후자가 잘못됐으며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는 사회 구성원간 다양성을 서로 인정받지 못해 '더불어 함께사는 세상'과는 더욱 요원해져만 가고, 최악의 경우 사회의 안정을 해하는 불행한 사태마저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린 평소 피부색이 다르다고 하여, 외국인이라고 하여, 장애인이라고 하여, 또 여성이라고 하여 차별을 일삼아왔다.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라고 하여 다시 차별한다.  그 사이 대한민국 인권을 신장시켜야 할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국제적인 망신을 톡톡히 사고 있다.  포용력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점점 다원화되며 복잡다단해져가가는 우리 사회에서도 구성원 상호간 서로 다른 점을 너그러이 인정해줄 줄 아는 배려의 문화가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과연 사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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