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굿모닝 맨하탄> 가부장적 인도사회를 가벼이 비틀다

새 날 2014. 2. 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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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권위의식이 팽배한 인도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높지 않은 편이다.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특히나 결혼한 여성은 그저 부엌떼기로서의 삶을 강요당한 채 오롯이 가족에게 희생하는 삶에 올인해야만 한다.  

 

영화속의 영어 울렁증은 바로 이러한 인도 사회의 현실을 빗댄 것일 테고, 한 여성이 이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통해 자아를 깨달아가며 한 쪽으로 심하게 기운 인도 사회를 통렬히, 아니 가볍게 비틀어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뉴욕 한복판에서 패션쇼를 벌이듯 형형색색의 인도 전통 의상을 매일 같이 번갈아 입으며 등장하는 여 주인공 탓에 이 영화가 인도 영화라는 사실을 절대 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지극히 인도적인 감성 코드를 곳곳에 버무려 놓아 감독의 인도 사랑을 여실히 느껴지게 만든다. 

 

 

인도의 평범한 가정주부인 샤시(스리데비)는 두 어린 자녀의 뒷바라지와 남편의 내조, 그리고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엄마이자 아내, 며느리로서의 1인 3역을 해오고 있다.  샤시에겐 '라두'라 불리는 인도 전통 디저트를 유난히 맛있게 만드는 필살기가 있다.  이를 맛본 사람들,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 정도다.  덕분에 이를 판매해 짭짤한 수입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녀에겐 말 못할 고민 하나가 있다.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충실히해오고 있지만, 영어 학교에 다니는 영특한 딸에 의해 힌두어만 할 줄 아는 샤시는 늘 무시 당하기 일쑤다.  남편(아딜 후세인) 역시 회사에서 업무차 영어를 사용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아내에 대해 평소 은근히 비아냥거리거나 자녀들과 함께 왕따를 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라두' 만드는 일마저 그녀의 비아냥 수단으로 활용하는 아주 못된(?) 남편이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샤시의 언니가 딸의 결혼 때문에 샤시 가족 전체를 초대하게 되고, 그중 선발대로 샤시 혼자만이 혈혈단신 미국 뉴욕에 입성하는데...

 

 

영화는 '재즈'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읽지 못해 자식과 남편에게 늘 놀림받을 정도로 영어에 관한 한 까막눈이었던 한 주부의 영어 본 고장 미국 뉴욕 입성과 그곳에서의 좌충우돌 영어 울렁증 극복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샤시가 평소 영어로 인해 느껴오거나 겪어왔던 서러움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는 나홀로 간 뉴욕에서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영어학원에 등록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인도 영화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블로거 이웃분께서 언젠가 인도 영화의 공통점을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 영화 역시 그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인도 사람들이 원래 흥이 많아 평소 노래 부르며 춤추는 행위를 유난히 좋아해서 그런 걸까?  영화 속에서 유독 노래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군무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듯 인도 전통의상과 전통춤이 등장하는, 지극히 인도적인 모습들이다.

 

 

샤시는 영어 울렁증을 스스로의 지난한 노력을 통해 극복해내며 그저 하찮은 '라두' 만드는 여편네라는 세상의 편견을 과감히 떨쳐낸다.  오롯이 스스로의 노력으로부터 얻은 대가인 실력을 통해 자신을 무시하고 비아냥거렸던 자식들과 남편에게 당당히 인정을 받는 샤시, 이는 평소 여성을 천대시하고 가부장적이면서 권위적인 인도 사회에 이젠 제발 정신 차리라며 뺨을 한 대 세게 갈기거나 일침을 가한 꼴이라 볼 수 있다.  

 

영화는 가족과 결혼, 그리고 자존감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게끔 배려하고 있다.  가족은 혈연관계로 맺어져 있어 그 누구보다 가깝기 때문에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구성원 간 자칫 함부로 대할 개연성이 높다.  이로 인한 상처는 외려 핏줄을 나누지 않은 타인들로부터 받는 그것보다 더욱 아프고 뼈저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가족 간의 진정한 사랑은 무시하지 않고, 비아냥거리거나 비하하지 않으며, 서로를 더욱 아끼고 존중해줄 때에만 비로소 싹이 트게 되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다. 

 

 

인생은 긴 여정이고, 결혼이란 가장 특별한 친구가 되는것이기도 하거니와 동등한 두 사람 간의 우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때론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을 테고, 또 때론 상대가 나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도 있을 테다.  그럴 때면 서로 동등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돕고 채찍질해야만 한다. 

 

 

아울러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반대로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때부터 아무리 사소한 일들조차도 흥미롭고 즐겁지 않을 수 없다는 샤시의 긍정 메시지, 때문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다소 코믹하기도 하거니와 흥에 겹고, 또 다른 한 편으론 잔잔한 내면의 울림마저 전해 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다.  가족 영화로서도 손색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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