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캡틴 하록> 순간의 진실을 모아 영원한 반란을 꿈꾼다

새 날 2014. 1. 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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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속았다.  영화 포스터 메인 상단을 장식하고 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란 글귀만을 보고 이분의 작품이겠거니 하며 끝까지 관람한 영화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올라오는 자막을 보니 실은 '아라마키 신지' 라는, 내 입장에선 여지껏 듣도 보도 못한 일본 감독의 작품이었다.  물론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본인 탓이 제일 크겠지만 광고 방식이 참으로 거시기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쩐지.. 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제임스 카메론의 작품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거니와 광고문구의 세상을 놀라게 할 혁명이 될 작품이란 표현은 무척이나 오버스런 느낌마저 들게 한다.  영화는 온통 음울한 기운으로 가득찬 메탈릭한 분위기와 삭막한 우주선들의 전투씬, 그리고 게임 속에서나 나올 법한 캐릭터들의 싸움 장면들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등장 캐릭터와 그들의 목소리 연기가 제대로 궁합이 맞지 않은 관계로 겉도는 느낌이 많아 원작이 전하려는 그럴싸한 세계관마저 희석시켜 버린 꼴이 됐다. 

 

 

80년대 유명세를 탔던 만화가 이 영화의 원작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주워 들은 듯도 싶지만, 물론 그의 내용이나 배경지식 따위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않은 채 관람한 영화다.  SF적 요소로 그득한 극의 흐름이나 내용상 이 영화가 애니메이션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건 어찌 보면 너무도 뻔한 설정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진일보한 3D 기술로 인해 인물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제법 명징하게 살아있고, 때문에 이미지들의 완성도 자체는 꽤나 높이 치켜 올려줄 만한 작품이긴 하다. 

 

외려 실사로 뽑아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운 생각마저 들게 한다.  얼마전 감상한 '타잔 3D'의 경우 당연히 실사가 어울릴 법한 극의 상황이었지만, 반대로 애니메이션화 하니 무언가 신선한 느낌으로 와닿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머나먼 미래, 5,000억의 인구로 인해 지구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덕분에 인류는 지구를 떠나 광활한 우주에 뿌려진 수많은 행성에 뿔뿔이 흩어진 채 고된 삶을 영위해오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마음속 한 켠엔 언젠간 인류의 고향 지구로의 귀환을 꿈꾸며 힘든 삶을 부지해 오고 있는 중이다.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치렀던 수많은 컴홈 전쟁의 상흔을 여전히 안고 사는 인류, 지구 연합방위사령부 격인 '가이아'가 이러한 지구를 보호한답시고 지구와 그 대기 전체를 절대불가침영역으로 설정하여 보호해 오고 있다.  이에 반기를 든 저항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아르카디아호를 타고, 온 우주를 유영하며 가이아에게 끊임 없이 위협을 가해오고 있는, 악명 높은 해적, 캡틴 하록이다.  

 

 

어느날 이름 모를 미지의 행성에 아르카디아호가 특유의 검은색 연기를 내뿜으며 등장하고, 이에 탑승할 새로운 전사 모집이 이뤄져 수 명의 도전자가 이에 응해오게 되는데, 그 중엔 '야마'라 불리는 결코 범상치 않은 청년 하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수 명의 도전자 중 자유를 찾기 위해 도전했다는 야마만이 새로운 전사로 특채되는 행운을 얻게 되는데...

 

 

하록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배우는 다름 아닌 류승룡 씨다.  하록의 캐릭터가 워낙 신비주의를 표방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무게만 잡고 나오는 바람에 목소리 연기가 쉽진 않았을 테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손쳐도 너무 바닥으로만 깔려버린 그의 목소리 탓에 캐릭터로부터 느껴져야 할 생동감 따위를 찾아볼 수 없었던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영화의 3D 그래픽 구현에 한국 기업 에프엑스기어의 퀄로스가 사용되어 화제란다.  이 툴은 캐릭터 의상을 보다 사실감 있게 구현하는 데에 사용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이 애니메이션 강국이라 해도 전체 3D 구현에 사용된 툴도 아니고 지극히 일부분에 사용된 사실을 홍보해야 할 만큼 우리의 애니메이션 기술력이 여전히 형편없는 것일까? 

 

이는 마치 예전 은하철도999 등 아날로그식 일본 애니메이션 대다수의 이미지 수작업을 한국 사람들이 도맡아 했다는 가슴 아픈(?) 전설과도 같은 얘기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에겐 손 재주가 있어 따라 그리는 수준에선 그 어느 민족보다 탁월했으며 인건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했지만, 정작 작품을 기획하거나 창작하는 능력은 갖추지 못해 그저 일본의 애니메이션 하청 기지 역할만을 해왔던 터다.

 

 

가이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하록은 파렴치한 테러 행위를 일삼는 특급 범죄자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던 진실이 실은 진실이 아니라면?  때문에 하록이란 인물은 그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파렴치범이 될 수도, 아니면 진정한 시대적 영웅이 될 수도 있는 다중 성격의 캐릭터다. 

 

하록을 다분히 영웅시한 이 영화, 그렇다면 세상의 반란을 꿈꾸는 혁명가적 기질을 제대로 내포하고 있노라 말할 수 있을까?  그도 아니라면, 짧은 매 순간이 모여 영원이 되고, 진실을 추구하는 자만이 세상의 진보를 이끌어가게 된다는 하록의 일성에 전폭적인 지지를? 

 

3D로 포장된 거창한 겉 모습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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