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선관위가 기표대를 교체해선 안 될 몇 가지 이유

새 날 2014. 2. 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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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관리위원회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34억원의 혈세를 들여 멀쩡한 기표대 11만개를 모두 신형으로 교체하겠단다.  기표소의 가림막 안에서 여전히 이뤄지고 있는 '투표 인증샷' 때문으로 보여진다.  결국 평소 눈엣가시였던 '투표 인증샷' 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가림막을 모두 없앤, 신형 기표대를 투입하겠노란 발상이다. 

 

선관위, 가림막 없는 신형 기표대로 교체

 

참고로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정당 및 정치자금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이다.  해당 조직은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와 똑같은 지위를 갖는 독립된 합의제헌법기관이기도 하다.

 

선거관리위원회 공식 캐릭터

 

현행 공직선거법은 기표소 안에서의 투표지 뿐 아니라 어떠한 형태의 촬영도 금지하고 있다.  투표소 밖에서의 인증샷을 찍을 때도 숫자를 연상시키는 표시 등은 절대 안 된다.  이러한 행위는 자칫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대선 당시 기표소에서 특정 후보자에게 기표한 투표용지를 휴대전화로 촬영, 투표를 독려한다는 취지로 인터넷상에 인증샷을 올렸던 이들이 기소되어 각각 정식재판을 받고 벌금형에 처해진 사례들이 있다.  대부분 벌금형 중 최하인 30만원을 선고 받았다.

 

기표대를 교체해선 안 될 몇가지 이유

 

물론 현행법으로 금지된 행위인 불법 인증샷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를 막겠다며 기표대의 가림막 자체를 없애겠다는 발상은 마치 벼룩 잡겠다며 초가삼간 태우는 일과 뭐가 다른가 싶다.  선관위가 애초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해 탄생한 조직이므로 이를 위해 때로는 제재가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기본권으로 보장된 선거권의 행사를 최대한 권장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독려가 필요할 때도 있을 듯싶다.



때문에 법으로 금지된 행위에 대해선 지속적인 홍보로 이를 알려 국민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성과 권리 행사를 보장해주고, 차후 법으로 정해진 테두리를 벗어난 행위에 대해서는 현행처럼 그에 따른 처벌을 하면 그만일 테다.  기표소 내에서의 인증샷 행위는 예전엔 볼 수 없었던,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소통 방식의 활성화가 부른 과도기적 행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과도기적 일부 행태에 대해 마치 전부가 그런 양 기표대의 가림막을 모두 없애겠다는 발상은 때문에 무척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울러 기표대의 가림막을 없애는 행위는 자칫 헌법 제41조 1항과 제67조 1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비밀선거제도의 취지를 훼손시킬 우려마저 존재한다.  비밀투표란 투표인의 투표내용을 외부에서 알지 못하도록 비밀을 보장하는 방법을 취하는 선거제도를 뜻한다.  투표자가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고 공정한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정한 제도인데, 가림막 없이 기표하게 함은 이를 위축시킬 공산이 크다.  더 나아가 최악의 경우 투표에 대한 의지마저 떨어뜨려 자칫 헌법에서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선거권의 행사를 막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 싶다.

 

멀쩡한 기표대를 바꾸는 데 들어가는 혈세는 또 어쩌랴.  무려 34억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거늘, 가뜩이나 정부의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내놓은 공약들도 줄줄이 후퇴시키거나 파기되고 있는데, 전혀 영양가 없어 보이고 심지어 국민들의 기본권마저 침해할 우려가 높은 사안에 우리가 낸 혈세가 무심히 낭비되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될 말이다.  그럴 예산이 있으면 차라리 부족한 복지 재원을 채워주거나 그도 아니면 우리 아이들의 열악한 교육 환경 개선에 활용되는 것이 백번 낫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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