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이정희의 다카키 마사오 논란, 두려움의 발로

새 날 2013. 7. 1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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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태 논란을 빚었던 국회가 발언 당사자인 민주당 홍익태 원내 대변인의 사퇴로 빠르게 정상화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발언을 놓고 집권세력과 언론들이 또 다른 논란으로 비화시키려는 듯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지난 13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이정희 대표의 연설에서 박정희를 다카키 마사오라 칭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정희 대표의 발언, 제2의 귀태를 꿈꾸다?

 

그런데 이를 보도하고 있는 언론들의 행태가 한결 같습니다.  아래는 언론들이 뽑은 기사 제목입니다.

 

 

대부분의 언론들, 지난 대선 당시 TV토론회에서 이정희 대표가 박정희를 다카키 마사오로 호칭했던 일을 상기시키며, 이번 국정원 규탄 범국민대회에서의 발언마저 "이정희도 귀태 논란에 뛰어들었다"라는 식의,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취지의 기사를 싣고 있었습니다.   매우 다양한 언론사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와 같이 판에 박힌 듯 똑같은 내용의 기사들을 뽑아낼 수 있는지 그저 의아할 따름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보며 이정희 대표의 발언을 빌미로 귀태 논란의 불씨를 계속 살려나가기 위해 부러 논란거리화 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우리 언론엔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기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귀태와 다카키 마사오는 차원이 다르다

 

이정희 대표의 이번 발언에 대해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종북주의자인 이 대표의 눈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무리 잘 해도 제대로 보이겠는가"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지난 5월 변희재가 이정희 대표에게 "종북 주사파"라 칭했다가 1,500만원이란 금액에 대해 손해 배상해야 할 처지에 내몰리게 된 법원의 판결을 기억하개 됩니다.

 

원고들(이정희 대표와 남편)은 그동안 사회 활동으로 이념이나 사상을 어느 정도 검증받았다,  피고들이 근거로 삼은 정황만으로는 이들이 북한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오히려 반대 정황도 엿볼 수 있다.

 

법원의 이러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여전히 종북세력이란 꼬리표가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향신문

 

아울러 귀태 발언과 다카키 마사오의 발언을 같은 맥락으로 묶어 억지 연결지으려는 시도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귀태는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가 만들어낸 조어로 이를 박정희에게 단순 빗대어 표현한 것이고, 다카키 마사오(일본어: 高木正雄 たかぎ まさお)는 박정희가 만주 군관시절 스스로 창씨개명한 이름으로서 만주군관학교 2기생 졸업앨범과 일본 육사 졸업앨범에서도 같은 이름을 사용하였음이 확인(위키백과 참조)된 바 있는 실재했던 역사적 사실입니다. 

 

즉 다카키 마사오의 호칭은 실재하던 이름이고 엄연한 사실이기에, 이를 귀태라 빗대 표현하여 논란을 빚었던 사안과 함께 팩키지화하려는 시도 자체가 사실 넌센스라는 것입니다.

 

우리 정치권에서의 막말 논란은 늘 있어 왔던 일입니다.  우리 정치가 여전히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귀태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확대재생산되며 일파만파 확산되었던 이유는 불보듯 뻔합니다.  집권세력들이 국정원 사건으로 불거진 현 상황을 어떻게든 반전시켜 보겠노란 얄팍한 속내가 바닥에 깔려있었던 셈입니다.  때문에 다카키 마사오 발언의 논란 야기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정통성 논란과 대선 불복 언급이 뜻하는 바는?

 

야권에서 18대 대선 결과에 대해 인정하지 않겠노라는 뜻을 공식적으로 피력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와 여권 일각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잦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말일 텐데, 왜 이런 식의 표현을 해야 하는지 저로선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정희 대표의 발언을 정권의 정통성 논란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만, 그 자체가 모순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직접 언급조차 되지 않은 정권의 정통성이니 대선 결과 불복에 대한 얘기를 청와대와 여권에서 스스로 꺼내들은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국정원 사건을 성토하는 촛불집회와 시국선언 등의 민의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국내 정치 공작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은 현 집권세력에게 있어 자꾸만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깊숙이 파고들어오니 두려움이 느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도둑이 제발 저린 셈이지요.

 

작금의 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짓고 싶은데 섣불리 인정했다간 역풍이 우려되는 상황일 테니, 일단 국정원의 셀프 개혁을 꺼내들어 국민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간보기가 시도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이것으로 마무리지어질 사안이 아니란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입니다.

 

결국 결자해지해야 할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자신인데,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반대 진영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 단어 하나 하나가 민감하게 들려올 테고, 그중 정말 듣기 거북한 단어는 폐부 깊숙이 파고들어와 후벼파는 듯한 고통을 전해 주기도 할 것입니다.  이들 단어가 날카로운 비수로 변하여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면 왜 그들이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역지사지인 셈입니다.  때문에 사실, 그리고 옳은 말들조차 때로는 이들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힐 정도의 큰 충격으로 전해져 이번 이정희 대표의 발언에 대한 반응처럼 격한 피드백을 쏟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무언가에 쫓기는 심경으론 심지어 옳은 말들조차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려 한다거나 대선 결과에 불복하려 든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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