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지하철 노약자석이 세대간 갈등의 불씨?

새 날 2013. 5. 27. 08:01
반응형

 

어르신 등 교통 약자 배려를 위해 도입된 노약자석, 하지만 애초 의도했던 도입 취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세대간 몸싸움과 거친 욕설이 오가는 갈등의 공간으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최근 지하철 노약자석을 놓고 벌이는 일부 이용자들의 아귀다툼이 세대간 갈등 양상으로까지 불거지고 있는 것입니다. 

 

노약자석 자리 다툼 크게 증가

 

지난 13일 40대 남성이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60대에게 다가가 "젊어 보이는 사람이 왜 노약자석에 앉아 있느냐"며 가방에 들어 있던 낫을 꺼내 휘두르다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채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20대 여성이 50대에게 봉변을 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왜 버릇없게 경로석에 앉아 있느냐"며 등산 지팡이로 그녀의 머리를 세게 내리친 것입니다.  

 

앞의 예에서처럼 언론에 보도되거나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등의 민원에 접수된 사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크고 작은 다툼들은 늘 끊임없이 있어 왔으며, 이러한 다툼들, 지하철 내 흔한 일상 풍경이 되어버린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

실제 통계에서도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의 "노약자석 자리 다툼 민원"을 살펴 보면, 2008년 62건에 불과했던 민원 건수가 2011년엔 420건으로 무려 6배 이상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해가 갈수록 노약자석을 둘러싼 자리 다툼의 횟수가 크게 증가하더니, 최근엔 하루 1건 이상의 민원이 접수될 정도로 그 양상이 변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하철 속 외딴섬 노약자석

 

서울 지하철 차량 내부를 유심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노약자석이 차량의 양끝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대간 갈등으로까지 표현되는 작금의 세태가 혹시 이러한 노약자석의 위치에서 기인하는 부분, 과연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어르신들, 일반석보다는 노약자석을 즐겨찾는 현상,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노약자석의 도입 취지로 비쳐볼 때 너무도 당연한 일인 건가요?  하지만 그보다는 어르신들 스스로 구석진 노약자석을 찾아 힘든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는 건, 일반 좌석이 젊은이들의 전유물인 양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곳에 머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불편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의 노약자석 위치는 어르신들을 부러 구석으로 내몰아 주류인 일반 좌석과 철저히 격리시키려 한 듯한 느낌 지울 수 없습니다.  어르신들을 지하철 속 외딴섬 노약자석에 가둬놓으려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노약자석을 어르신들만의 배타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게끔 강요하는 느낌 때문에 역으로 이에 대한 반감을 불러올 수 있을 듯합니다.  교통 약자 배려를 위해 설치한 노약자석, 취지와는 달리 어쩌면 세대간 갈등을 키워온 불씨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지하철 내 외딴섬 노약자석은 이의 주 이용자층인 어르신들에게나, 왠지 범접해선 안 될 공간이란 느낌을 받을 젊은이들 모두에게 불통의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기에 결코 바람직한 형태는 아니란 것입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면 굳이 노약자석이란 공간을 별도로 설치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를 바라기엔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너무도 많이 산적해 있는 상황, 해법을 달리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고령화사회 진입 목전에 둔 우리, 배려의 미덕을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있어 개인주의란, 몸에 자연스레 체화되어 매우 익숙해진 그들만의 성향입니다.  때문에 이들에게서 장유유서 정신을 기대하기란 이미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대접을 받던 시대적 조류는 지나도 한창 지난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연장자로서 공경받고 싶어하는 어르신들, 때문에 이러한 세대간 더욱 벌어진 견해의 격차가 갈등의 불씨로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노약자석의 지정이란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형태는 아닙니다.  하지만 배려 문화가 부족한 사회에선 노약자석의 지정이 필요악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노약자석 형태는 마치 갈 곳 없는 어르신들이 도심 속에 구축한 어르신들만의 외딴섬, 종묘공원이나 탑골공원을 연상케 합니다.  따라서 노약자석의 설치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외딴섬처럼 구석에 배치하지 말고 차라리 좌석 중간 중간에 배치하여 세대간 자연스런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처럼 외딴섬에 어르신들을 고립시켜 세대간 행동 반경에 선을 그어버린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세대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향후 노령인구의 급증 현상이 예상되는 터라 이러한 상황을 더욱 부채질할 공산이 커 보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배려 문화가 아쉽습니다.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에게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양보하여 주고, 어르신들 또한 노약자석에 설사 젊은 사람이 앉아 있다 하더라도 어딘가 불편해서 그렇겠거니 하며 웃으며 양보해주는 배려의 미덕을 보인다면, 세대간 굳게 닫혀있던 갈등의 문도 서서히 풀릴 것입니다.  노령인구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 얼마 후면 지하철 내 노약자석의 구별이 무색해지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건 젊은 세대와 어르신 세대가 함께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밖에 없어 평화로운 공존의 해법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노약자석이란 격리된 물리적 공간보다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배려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세대간의 갈등을 누그러 뜨리고 소통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하며 결정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