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말라뮤트 밥상을 호시탐탐 노리는 종족의 정체는?

새 날 2013. 5. 7.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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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집 정원에 서식 중인 개님, 미르 얘기입니다.  이제 날씨가 본격 여름을 향해 치달아가기에 이 즈음이면 미르의 온몸을 감싼 털들이 무척이나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인데요.  털갈이 시즌도 요맘때쯤 시작된답니다.  미르의 털들이 뭉텅이로 뽑혀 사방천지 하늘하늘 나풀거리며 돌아댕길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인 게지요.  뭐 어쩌겠습니까.  이 녀석을 키우며 당연히 감내해야 할 운명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상인걸요.

 

 

오늘도 여전히 벽타기 신공을 펼져주시는 미르입니다.  저 큰 덩치로 두 발만을 딛고 일어서 있기를 꽤나 즐겨하는 미르지요.  사람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자신이 마치 사람이라도 되는 양 꿈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사는 모양입니다.  툭하면 일어서서 저러고 있네요.

 

 

주인님의 귀차니즘으로 인해 겨우내 찌든 때를 아직도 벗겨내 주지 못했답니다.  하루 빨리 목욕재계하여 깨끗한 본래의 자태를 뽐내야 할 텐데 말이지요.  아~ 이놈의 귀차니즘이란...



그런데 욘석의 사료를 호시탐탐 노리는 외래 종자들이 근래 많아져서 고민입니다.  그 종자는 다름 아닌 조류랍니다.  수많은 조류 중에서도 바로 비둘기..  처음엔 한 두 마리만이 접근하더니 근자엔 그 개채 수가 꽤나 늘었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비둘기들이 접근해 올 때면 욘석이 쫓아내더니, 언젠가부터는 자신의 사료를 빼앗아 먹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을 그윽이 바라보며 즐기는 눈치였어요.

 

 

아침이면 거짓말처럼 저 위에 주욱 나란히 앉은 비둘기 떼들이 미르의 사료가 나타나기만을 눈 빠져라 노려보고 있답니다.  비둘기를 쫓아내지 않는 미르를 보고 처음엔 "참 속도 좋지"하며 끌끌 차기도 했었지만, 이후 미르의 행동을 관찰해 보니 욘석이 혹시 비둘기들에게 자신의 사료를 양보해 가며,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더군요.

 

비둘기 키우는 말라뮤트라...  이거 왠지 멋진 일 같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리 없으리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이후 유심히 욘석의 행동을 관찰해 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비둘기들이 접근해 오면 미르가 슬그머니 자신의 자리를 내주는 겁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어요.  말라뮤트의 특성 중 하나인 서열에 대한 생각이 언뜻 스쳤습니다.  욘석들은 서열을 매우 중요시하는 성향이 있는지라 자신보다 서열이 높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충성하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자신보다 아래 서열이라 생각하면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거든요.  처음엔 비둘기들을 경계하고 쫓아내기도 하던 녀석이 어느날부터 이를 포기하고 자리를 슬며시 내주는 것을 보아 하니 서열에서 비둘기들에게 밀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겁니다.

 

비둘기들이 자신보다 서열상 위에 위치해 있노라 여기고 있는 게지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비둘기와의 서열싸움에서 분명 밀린 것이라 판단되는 겁니다.  이런 바보 같은 녀석 하고는...   덩치는 산 만 한 녀석이.. 쯧쯧

 

 

미르의 식습관. 사료를 한 그릇 가득 퍼 놓으면 스스로 필요할 때마다 조절해 가며 먹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한 그릇 가득 퍼 놓곤 하는데, 비둘기 녀석들이 그 시간대를 감지하고선 항상 그맘때 나타나 미르의 사료를 습격하곤 합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오전 중엔 사료 그릇을 정원 한 곳에 덮어놓고 무거운 것을 올려 놓아 비둘기들의 접근을 차단시킨답니다.  단순히 뚜껑만 덮어 놓으면, 서열 높으신(?) 영악한 비둘기들께서 부리로 쪼아 뚜껑을 열고 결국 내용물을 자신들이 섭취하기 때문입니다.

 

 

곰의 탈을 쓴 개 한 마리가 포효하듯 서 있는 꼴이란...  참 못생겼지요?  하지만 우리집 개님이라 그렇다기 보다 실제의 모습, 훨씬 잘나시긴 했어요.  바보처럼 비둘기들한테 서열이 밀려서 문제지만요.  말라뮤트가 워낙 순둥이 같은 성격인지라 심지어 비둘기들에게마저 서열을 빼앗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비둘기들을 단순히 날파리처럼 귀찮은 존재라 여긴 나머지 아예 포기하고, 자신의 사료를 내주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정원 철쭉들이 이제서야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올봄은 유난히 궂은 날이 많아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이제 날씨는 곧 여름으로 향하고, 그나마도 미르를 정원에 마냥 풀어놓는다면, 이꽃의 운명도 어찌될지 알 수 없는 노릇...

 

자, 그럼 비둘기 키우는 말라뮤트, 아니 비둘기에게 서열 빼앗긴 말라뮤트 얘기는 여기에서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담번엔 미르를 깨끗하게 단장시킨 후 보다 의젓한 모습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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