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의 전설

알래스카를 향한 갈망은 무죄 "난 말라뮤트다"

새 날 2013. 7. 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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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도 더운 날의 연속이다.  너무 더우니 이젠 숨 쉬는 일조차 귀찮을 정도다.  내 몸을 켜켜이 감싸고 있는 이 멋진 털들이 요즘 같은 땐 정말이지 거추장스럽다 못해 몽땅 뽑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30도를 웃도는 이 더위에 털이불을 한 겹도 아닌 두 겹이나 당신들 몸에 둘둘 말고 있다는 상상을 해 보시라.  조금 이해가 가시려나? 

 

너희 인간들은 아마 그와 같은 상황을 단 10분도 채 견디지 못할 게다.  내 너희들의 얕은 인내심, 진작부터 알아왔던 터이기에...  하지만 우리는 너희들과 분명 다르다.  비록 힘은 들지언정 군말 없이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며, 꿋꿋이 이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난 알래스칸 말라뮤트다"

 

 

아주 가끔은 주인님과 같은 인간들이 부러울 때가 있긴 하다.  바로 요맘때다.  땀구멍이 온몸에 분포돼 있어 그를 통해 체온조절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내겐 너무 부러운 거다.  체온조절 기능이라곤 혓바닥이 전부인 내게 인간들은 혀가 무척이나 크니 어쩌니 하며 호들갑들 떨곤 한다.  하지만 난 이 정도의 크기론 성이 안 찬다.  내 몸을 모두 감쌀 만큼의 크기였더라면 원이 없겠다.  "그래, 난 알래스칸 말라뮤트다"

 

거추장스런 털을 주인님께 말씀드려 모두 밀어버리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한 번 생각해 보시라.  털이 모두 깎인 나의 초라하기 그지없는 알몸을..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 털이 요즘 같은 시기엔 비록 거추장스런 애물단지에 불과하다지만, 만약 이게 없다면 내 멋진 자태도, 나의 정체성도, 나의 자존감도 모두 함께 사라질 판이다.  나의 이 아름다운 외관을 유지시켜주는 건 순전히 이 털들이기 때문이다.  내겐 애증의 털이기도 하다.  "그래, 난 알래스칸 말라뮤트다"

 

 

요새와 같이 더운 날이면 난 시원한 시멘트 바닥에 온몸을 맡긴 채 아련한 로망으로만 남은 알래스카를 갈망해본다.  나의 이 강인한 준족을 이용해 눈 쌓인 설원을 달리는 꿈을...

 

하지만 난 연고라곤 털끝 만큼도 없는 이 땅에서 태어나 더운 여름이면 헥헥거려가며 개고생을 하고 있다.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지만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난 여전히 탈출을 꿈꾼다.  내 고향 알래스카로 돌아가는 꿈을...   "그래, 난 알래스칸 말라뮤트다"


털갈이가 본격 시작되었는가 보다.  온몸이 근질거려오며 군데군데 털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차라리 다 뽑혔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또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다.  맞아, 나의 정체성...

 

주인님의 투덜거림이 요사이 조금 심해진 듯하다.  아무래도 사방 팔방으로 날아다니며 굴러다니는 나의 분신들 때문이리라.  일전에도 얘기한 적 있지만, 주인님의 성질이 참으로 유별나며 까탈스러운 거다.  투덜거린다고 뽑힐 털이 안 뽑히기라도 한다더냐?

 

난 지금도 시원한 시멘트 바닥에 나의 몸을 맡긴 채 알래스카의 시원한 공기를 그려가며 설원을 달리는 꿈을 꾼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래, 난 알래스칸 말라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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