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광팬을 자처한 이후, 최초로 앨범 발매와 동시 구입한, 내겐 조금 특별한 의미의 앨범이다. 9집 발매가 발표되었을 당시 얼마나 기뻤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살짝 떨림이.... 언론을 통해 앨범 발매 소식을 듣고, 바로 동네 레코드 가게로 직행했으나, 동네 그 어느 가게를 둘러봐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점포 주인이, 앨범의 발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쩔 수 있겠는가. 나는 버스를 타고 시내의 보다 큰 레코드 가게를 수소문하게 된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우연히 지나치던 종로의 한 레코드 가게, 독수리 그림이 그려져 있는 9집 앨범이 전시대에 떡 하니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난 반가운 마음에 앞뒤 가리지 않고 정류장에서 내려 마침내 9집 앨범을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이때의 기분은 정말이지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바로 원하던 무언가를 득템한 기분?... 다들 알랑가?
힘들게 구한 앨범이었지만, 정작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영 별로였다. 이제껏 출시된 산울림 곡들의 연주와는 다른, 무슨 지하실에서 제대로 갖춰진 시설도 없이 자기들끼리 연주하며 녹음한 듯한, 라이브 연주? 그래, 꼭 그런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9집엔 몇가지 면에서 특별함이 숨겨져 있단다. 우선, 앨범 프로듀싱을 그들 스스로 했으며, 물론 녹음 작업까지, 모든 앨범 작업을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해낸 작품이란다. 아울러 막내 김창익이 유일하게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 '길엔 사람도 많네'가 실려 있어 그 어느 앨범보다 소중했다는 김창완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듯 김창완의, 형제들에 대한 애정은 애틋했으며, 특히 막내 김창익에 대한 마음은 더욱 소중했었는데... 그런데 그런데... 2008년, 막내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난다... 김창완에겐, 이번 앨범 수록곡 중 '길엔 사람도 많네'가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라며, 앨범 발매 당시 스스로 밝힌 바 있다.
타이틀 곡인 '웃는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가 그나마 가장 대중성에 근접했던 곡이 아니었을까 싶었고, 난 이 노래의 히트를 예상했건만, 전혀 엉뚱한 '더더더'라는 발라드 곡이 가장 성공을 거둔다. 음악시장에서 '김창완 하면 발라드'라는 공식이 아직 지배적인 느낌이라 그런 걸까. '더더더'는 대중성도 그렇지만, 음악적 완성도 측면에서 보더라도 난 솔직히 별로였다.
산울림의 참신함과 혁신성, 아울러 자유로움? 이런 느낌들이 이번 앨범의 발매 이후부터 퇴보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사회 생활 탓에 음악에만 몰두하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창작 능력의 고갈? '소낙비'는 김창훈식 락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노래이다. 이후로는 이런 류의 노래는 자취를 감춘다. 김창훈식 발라드 7집의 '독백'이 인기를 얻은 후 이보다 더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건 무척이나 행운이다. 매번 헐크 같은 목소리 내지 가성의 고음만을 내지르던 김창훈이, '쉬운일 아니예요'에서는 우리에게 감미로운 음성을 들려준다. 김창훈도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도 모르겠다.
발매 : 1983년 1월 10일
작사, 작곡 : 김창완
A면
1. 웃는 모습으로 간작하고 싶어
2. 더.더.더
3. 소낙비 (작사, 작곡 : 김창훈)
4. T.V도 끝났는데
5. 빨간 신호등
6. 황혼
B면
1. 멀어져간 여자
2. 길엔 사람도 많네 (작사, 작곡 : 김창익)
3. 저기
4. 속도 위반 (작곡 : 김창훈)
5. 쉬운 일 아니예요 (작사, 작곡 : 김창훈)
6. 시장에 가면(건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