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일이다. 아마도 청소년 시기였을 듯.
철딱서니 없게도 난 집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소변을 보고 있었다. 그런 내게 어머니께서 한 말씀 거든다.
"인석아, 집에 너만 있는 것도 아닌데 문을 닫고 볼일을 봐야지"
짐작건대 비슷한 일이 수차례 반복되었었나 보다. 그러니까 울 어머니 성정상 벼르고 벼르다 그날 작정하고 말씀하신 게 틀림없다. 눈치 없게도 그제서야 난 내 불찰을 알아차렸다. 아차 싶어 이후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설령 집에 아무도 없다 해도 말이다. 이젠 문을 꼭 닫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이게 다 어머니 덕분이다.

세월이 훌쩍 흘렀다.
나를 나무라셨던 그 당시 어머니의 나이보다 어느덧 내 나이가 더 많다.
어느 날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데, 어머니께서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볼일을 보고 계셨다. 무안했던 난 짐짓 모른 척 내 방으로 쏙 들어와 버렸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한 번쯤은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비슷한 일들은 몇차례 반복됐다. 그때마다 난 모른 체하며 인상만 살짝 찌푸렸다.
'당신도 무안하셨을 테니, 다음부터는 조심하시겠지'
2년 전 어머니께서 몹쓸 병에 걸리셨다. 병원을 오가는 횟수가 많아지고, 처방 받은 약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갈수록 수척해져가는 어머니. 그런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 보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다. 기력이 딸리니 당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텐데. 차라리 내 몸이 아팠으면. 그러다 보니 볼일 보실 때도 툭하면 화장실 문을 열어놓기 일쑤였다.
그날도 그랬다. 화장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전등 꺼진 깜깜한 화장실 안엔 어머니가 계셨다. 그동안 마음 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말들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제게 볼일 볼 때 문 닫으라고 하셨었잖아요. 그런데 요즘 어머니는 왜 자꾸만 문을 열어놓으시는 거예요"
어머니는 생각이 많아지시는 듯싶었다. 한동안 말 없이 계시다가 풀 죽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석아 급해서 그랬어"
난 바로 후회했다. 당췌 무슨 말을 한 건가. 당신의 몸 건사하기도 버거워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가족 사이에서 그깟 무안함이 뭐 대수라고. 그 정도 배려도 못 해주는 내 옹졸함이 밉고 싫었다. 당시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는데, 난 너무 철이 없었던 셈이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엔 부모님의 결정이나 행동 중에 이해 안 가는 점들이 참 많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 역시 조금씩 부모님을 닮아가고 있음을 문득 깨닫는다. 깜박 잊기도 잘한다.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대화의 맥이 끊기기가 부지기수.
근래 어머니의 빈 자리로 인해 그동안 눈치 채지 못했던 당신의 역할을 몸소 체험 중이다. 당신이 그때 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씩 조금씩 난 당신을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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