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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최적화된 스릴러물.. 영화 '키미'

새 날 2022. 2. 2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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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스피커 '키미'를 개발한 '아믹달라', 이 회사는 기업 공개를 코앞에 둔 상황이다. 키미는 기존의 인공지능 제품들과 달리 알고리즘에 의존하지 않은 채 사람이 일일이 개입하여 제품의 품질을 키워왔다. 소통 오류 신호를 포착, 이를 개선함으로써 키미의 이해력을 증진시키는 방식이다. 아믹달라 소속 직원인 안젤라(조 크라비츠)가 담당하는 직무는 다름 아닌 이 음성 데이터의 스트림 분석이다. 

 

그녀의 작업은 주로 집에서 이뤄진다. 가전제품뿐 아니라 전력으로 작동되는 집안의 웬만한 편의시설들은 인공지능 스피커 키미에 연동되어 간단한 문장 몇 마디만으로도 조종이 가능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키미의 오류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 스트림 분석에 나선 안젤라. 잡음이 겹겹이 쌓인 소리 틈 속에서 예사롭지 않은 목소리를 감지해낸다. 첨단 음향 장비를 동원, 정밀 분석에 나선 안젤라는 음성의 주인공이 범죄에 연루되어 희생됐거나 위험에 처해있음을 직감한다.

 

 

영화 <키미>는 광장공포증을 앓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인공지능 스피커의 데이터 분석 업무를 담당하던 여성이 어느 날 범죄 정황이 담긴 데이터를 발견하고, 이를 인공지능 스피커 개발사와 수사 당국에 신고하면서 모종의 세력으로부터 쫓기게 되는 스릴러 장르의 작품이다.

 

안젤라는 데이터 분석 도중 드러난 범죄 정황 사실을 회사에 알린다. 하지만 회사는 의례적인 입장만 되풀이할 뿐 미온적인 반응 일색이다. 간신히 담당 책임자와 접촉하게 되는 안젤라. 그녀는 책임자를 만나기 위해 아믹달라 본사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그녀가 마주하게 된 책임자 역시 회사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의뭉스러운 데다가 소극적이기까지 했다.

 

 

FBI(미연방수사국)의 입회 하에 데이터를 공개하겠다는 애초 약속 따위는 온데간데없었다. 다짜고짜 해당 데이터부터 내놓으라고 압박해온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게 되는 안젤라,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뒤를 바짝 쫓는 의문의 남성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그곳에서 달아나야 했다. 

 

 

극 중 안젤라는 광장공포증이라는 불안 장애를 앓는 인물이다. 때문에 혼자의 힘으로는 집 밖으로 단 한 걸음도 내딛을 수조차 없다. 어쩔 수 없이 집을 벗어날 경우에는 상당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 모든 과정은 일정한 루틴에 의해 진행된다. 음성 스트림 분석 직무는 그런 그녀에겐 최적의 일자리로 꼽힌다. 집이라는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 머무르며 재택 근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불안 장애를 유발해온 인자 때문일 듯싶으나 단순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범죄 정황을 읽어낼 만큼 안젤라의 감각은 탁월한 것이었다. 

 

 

그녀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방구석에서 주로 디지털 기기를 매개로 이뤄진다. 바깥 세상이 그리울 땐 창문 위로 그려지는 건물 아래쪽 사람들 혹은 길 건너 건물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욕구를 해소하곤 한다.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을 구축해놓은 안젤라. 이런 환경 속에서 인공지능 스피커 키미가 선보이는 섬세한 기능은 키미 개발사가 호언장담하는 것처럼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영화는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범죄 정황이 담긴 데이터를 빼앗으려는 자와 이를 지키려는 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하지만 자동차 등의 탈 것을 활용한 아날로그 방식의 액션을 기대한다면 실망이 클 수도 있겠다. 그물처럼 촘촘이 깔린 통신망과 방대한 양의 디지털 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액션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안젤라가 남긴 통신 패킷은 그녀의 뒤를 쫓는 자에겐 결정적인 위치 정보가 되어주고, 그녀만의 유일한 생체 정보는 그녀가 곧 안젤라임을 입증하게 된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거대 규모의 디지털 데이터 센터를 헤집으며 도망치는 안젤라의 모습. 이는 인간의 도구에 불과하던 디지털이 그 규모가 방대해지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반대로 디지털의 도구 역할을 인간이 하게 될지도 모르는 끔찍한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생체 정보가 일개인의 모든 걸 입증해주는 시대에는 이렇듯 인간이 거대한 디지털 세계에 갇혀 통신망을 타고 이동하며 한낱 도구화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주연 배우 조 크라비츠의 디지털 기기 활용 신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영화 <키미>는 인공지능과 디지털로 대변되는 가까운 미래 사회를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디지털에 가장 최적화된 인물을 스토리에 녹여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액션 및 스릴러물로 재주조했다. 극의 결론은 지극히 디지털적이지만, 인간은 결코 디지털에 예속될 수 없다는 바람도 담겨 있다. 단순히 쫓는 행위만으로도 버겁기 짝이 없는 인공지능 키미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 그나마 작은 희망으로 다가오는 대목 아닐까.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 이미지 출처 : HBO 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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