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묻는 영화 <어느 가족>

새 날 2021. 12. 2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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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서는 예전에 비해 그 의미가 다소 포괄적인 개념에 가까워졌지만, 가족은 통상 '혼인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 또는 그 구성원과의 관계'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조금은 특이한 형태의 가족도 존재한다. 겉으로 볼 땐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손주까지 3대가 함께 복닥거리면서 사는 영락없는 대가족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피가 전혀 섞여 있지 않다. 그 흔한 혼인관계조차 없다. 쉽게 떠올릴 법한 전통적인 관계의 가족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않다. 가족 구성원들은 일용직이나 유흥업소에 몸 담으며, 아이에게는 도둑질을 종용하는 등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집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영화 <어느 가족>은 전통 의미의 가족과는 달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조금은 색다른 가족 구성원을 둘러싼 이야기다. 우연히 길 위에서 추위에 떠는 소녀를 발견, 새로운 구성원으로 맞이하면서 이들 가족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감독의 세심한 시선으로 그렸다. 작품성도 인정 받았다. 2018년 개최된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는 앞서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긴 연금으로 연명 중이다. 외부에서 주워온 아이 쇼타(죠 카이리)로부터 아빠라 불리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그의 배우자 역할을 자처하는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할머니의 연금에 기대어 살아간다. 오사무를 형부라 부르지만, 실제로는 노부요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키(마츠오카 마유) 역시 이들과 한 가족이다.

 

이 가정, 언뜻 볼 땐 불협화음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의 조합은 신기하게도 절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혈연에 비해 훨씬 느슨한 관계임에는 틀림없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연유 때문인지 이들 가족은 웬만한 가정에 비해 훨씬 화목하고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오사무와 쇼타가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사사키 미유)를 발견하고 아이를 돕기 위해 집으로 데리고 온다. 

 

 

소녀에게는 유리라는 이름이 주어진다. 유리의 몸 곳곳에는 깊은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폭행과 관련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상황이었다. 아동 학대 정황이 의심된다. 이런 가운데 가족 중 오빠 역할을 도맡은 쇼타는 유리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필살기인 도둑질을 학습시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와 곧잘 호흡을 맞추게 되는 유리. 비록 새롭게 둥지를 튼 가정이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데다 심지어 도둑질까지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지만, 아이는 빠르게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간다.

 

 

잃었던 웃음도 제자리로 돌아온다. 할머니를 비롯하여 오사무와 노부요 그리고 아키까지, 이들 가족 모두가 유리를 구성원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정성껏 진심으로 보듬어준 덕분이다. 이렇듯 새로운 가정에서 빠르게 적응하고 안정을 찾아갈 무렵 유리가 유괴됐다는 보도가 방송 전파를 타게 된다. 이들 가족은 앞으로 어떤 현실과 맞닥뜨리게 될까.

 

 

이전 가정에서 정서적, 육체적 어려움을 호소했던 유리가 새 가족을 만나 가정의 따스함을 느끼고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흐뭇함으로 다가온다. 이전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새 옷으로 갈아 입힌 뒤 여지없이 폭행이 가해진 듯 유리는 새 옷과 관련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이에 노부요가 아이를 정성껏 안아 이쁜 색감의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함께 함박 웃음을 지어 보이는 신은 특별한 기교가 없었음에도 그 어떤 장면보다 아름다웠고, 더불어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흡사 논픽션을 보고 있는 듯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는 리얼함 그 자체다. 진짜 가족인 양 능청스럽게 펼쳐 보이는 깨알 같은 생활 연기가 압권이다. 이를 연출한 감독의 감각은 유난히 돋보이며, 우리 시대의 가족 관계라는 제법 묵직한 화두를 꺼내들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칭찬 받을 만하다. 

 

느슨하게 이어진 관계가 핏줄로 촘촘히 연결된 관계보다 더 진심일 수 있을까? 더 끈끈할 수 있을까? 영화 <어느 가족>은 갈수록 진심에서 멀어져가는 우리 시대의 가족 관계 및 그 역할과 관련하여 관객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아동 학대 소식, 그리고 무늬만 가족 관계에 지나지 않은 한계 가정이 즐비해가는 현실 속에서 결코 정형적이지 않으며 전통 개념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이고, 또 어떠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 이미지 출처 : 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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