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작은 위안으로 이끄는 영화 <카모메 식당>

새 날 2021. 12. 2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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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카페 겸 음식점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나홀로 운영 중이다. 가게를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손님이 많지 않다. 그녀는 손님이 곧 하나둘 늘어날 것이라 믿고 매일 아침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며, 분주한 손길로 식기들을 닦는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첫 손님을 맞게 되는 카모메 식당. 토미(자코 니에미)라 불리는 핀란드 국적의 청년이다. 그는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사치에와 금방 가까워진다. 그렇게 카모메 식당과 인연을 맺은 그에겐 사치에가 정성껏 내린 커피를 마시는 일이 매일 치러야 하는 일과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무작정 핀란드 여행에 뛰어든 일본인 여성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를 사치에가 우연히 만나게 된 건 이 무렵이다.

 

 

영화 <카모메 식당>은 한 일본인 여성과 그녀가 핀란드에서 운영 중인 식당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렸다. 식당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은 곧 우리의 사연. 식당 주인은 솜씨 좋은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여 선보이고, 각종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갈 곳이 여의치 않던 미도리에게 사치에와의 만남은 일종의 구세주처럼 다가온다. 당분간 그녀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한 것이다. 가게 일도 돕기로 했다. 일본 애니 '갓챠맨'의 가사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낯선 이국땅에서 카모메 식당의 안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의기투합한다. 미도리는 좀처럼 식당 손님이 늘지 않는 원인을 기존 메뉴라 판단하고, 신메뉴 개발에도 적극 나선다. 두 사람의 노력은 과연 어떤 결실을 맺게 될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지만, 한때 우리 사회 전반으로 북유럽 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짐짓 여유 있어 보이는 북유럽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작은 위안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쩐지 유유자적한 삶을 살 듯한 그들을 동경하고, 심지어 따라하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로 북유럽 바람은 거셌다. 우리와 생활 여건이나 환경이 엇비슷한 일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카모메 식당>은 북유럽 국가 가운데 하나인 핀란드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극중 등장인물들이 북유럽과 관련한 소재로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핀란드 사람들은 한결 같이 느긋하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 같다는 그들의 대화 속에는 일견 북유럽인들을 향한 동경과 부러움이 묻어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카모메 식당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은 어디든 결코 다르지 않음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오히려 손님을 향한 사치에의 한결 같은 공손함, 가게 운영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평상심을 유지하며 서비스에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태도, 그리고 유행을 쫓기보다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꿋꿋이 지켜내려는 뚝심 따위가 우리의 삶을 이상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좌표가 될 수 있음을 에둘러 표현한다.

 

 

극의 흐름은 잔잔하다 못해 조용하다. 액센트가 없고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 일색이다. 주인공 사치에의 이미지를 쏙 빼닮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데 더욱 신기한 건 관객은 영화를 그저 관람하는 행위만으로도 위안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만의 묘미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식당, 그곳에서 매일 손님을 맞이하는 공손한 주인. 그저 음식을 만들고, 그릇을 닦고, 커피를 내리고, 주문 받은 음식을 손님에게 전달하고, 시나모 롤과 커피를 먹고 마시고, 손님이 들어오고, 손님이 나가는, 카모메 식당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상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작은 소음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듣는 행위만으로도 관객은 작은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 <카모메 식당>은 일종의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이다. 북유럽, 특별히 핀란드를 닮았으나 정체성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뚜렷한 일본 여성과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이 이 조그만 점포 안에서 벌이는 모든 일들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상 속 소음처럼 우리를 작은 위안으로 이끈다.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 이미지 출처 : (주)엔케이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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