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짜임새 있는 심리전 <진범>

새 날 2020. 3. 2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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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송새벽)의 아내 유정(한수연)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다. 경찰은 영훈의 친구 준성(오민석)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준성의 아내 다연(유선)은 남편의 무죄를 일관되게 주장하며 이의 입증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무죄 입증이 여의치 않은 상황. 다연은 법정에서의 직접적인 증언이 가장 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 영훈으로 하여금 남편의 무죄 증언에 나서도록 모든 자원을 집중시킨다. 


영화 <진범>은 아내가 살해당한 뒤 진범을 추적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다.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얽힌 주변인물들이 펼치는 심리전을 짜임새 있게 그렸다. 이 작품은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장편 관객상을 수상했다.



영훈과 준성은 둘도 없는 절친 사이이다. 준성과 영훈의 아내 역시 같은 대학의 선후배 사이로 평소 친분이 두터웠다. 돈독한 관계 덕분에 영훈과 준성은 각기 결혼한 뒤에도 서로 지척에서 살며 교류가 잦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거진 뜻밖의 살인사건. 이는 두 가정의 모든 걸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절친인 준성이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영훈은 두 사람이 그간 견고하게 쌓아온 우정은 물론, 믿음까지 뿌리째 흔들리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사건 이후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던 영훈. 어느 날 다연이 그에게 다짜고짜 찾아온다. 그녀는 영훈에게 항소심 법정에서 준성의 무죄를 증언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용의자가 친구라는 사실을 결코 믿고 싶지 않았던 영훈. 하지만 경찰의 수사 결과 모든 정황은 준성이 용의자임을 가리켰다. 그는 흔들리는 현실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이즈음 등장한 다연은 그의 불안한 심리에 더욱 불을 지핀다. 



결국 영훈은 대가를 전제로 친구의 무죄 증언에 나설 것을 결심한다. 피해자와 용의자의 가족이라는, 이해관계가 극명히 갈린 그들 간의 관계였지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목적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해야 했다.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 나선 영훈, 그리고 남편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다연. 각기 원하는 것을 손에 얻기 위한 두 사람의 공조는 이렇게 시작된다. 


영훈은 가장 먼저 경찰의 수사기록과 그 스스로 확보한 자료들을 토대로 사건 재구성에 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의 한 남성을 납치하는 영훈은 그로부터 사건의 전모를 밝히려 한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던 날 현장에 머물렀던 인물이다. 의문의 남성은 과연 영훈의 기대처럼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걸까. 

 


영화는 준성과 영훈 아내 사이의 치정 관계, 그리고 준성과 의문의 남성 아내 사이의 치정 관계를 미끼로, 다양한 시점 변화를 통해 관객의 추리에 혼선을 더한다. 여기에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의문의 남성을 등장시킴으로써 마지막 반전을 꾀한다. 마침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복기한 사건의 실체는 머리카락 한 올을 화룡점정으로, 퍼즐 조각을 맞추듯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현상. 이는 인간의 본성일까. 영화 <진범>은 이러한 속성에 의해 쉽게 미혹되거나 흔들리는 현대인들의 나약한 현실을 꼬집는다. 


무엇보다 이해관계가 전혀 다른 이들의 불협화음 속 공조를 통해 그려내는 고도의 심리전이 압권인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소름을 돋게 한다. 진범으로 의심될 만한 인물들을 집중적으로 부각, 극을 끝까지 긴장감 있고 밀도 있게 끌어 나가는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감독  고정욱


* 이미지 출처 : (주)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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