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인간의 편견과 과도한 욕망 꼬집는 영화 <경계선>

새 날 2020. 3. 1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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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의 불법적인 물품 반입 확인을 담당하는 출입국 세관 직원 티나(에바 멜란데르). 그녀에게는 남들이 갖추지 못한 독특한 재능 하나가 있다. 다름 아닌 사람의 감정을 후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덕분에 수많은 불법 행위들이 그녀에 의해 적발된 뒤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지곤 했다. 기계장치가 아닌 오직 신체의 감각기관에만 의존하여 판별해내는 티나의 능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확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묘한 분위기의 한 남성이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했다. 티나의 예민한 감각이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주변은 미심쩍은 기운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검사 결과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티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성. 하지만 이번에도 불법 행위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레보(에로 밀로노프)라 불리는 이 남성과 티나의 인연은 이렇게 싹튼다. 


영화 <경계선>은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북유럽의 ‘트롤’ 신화로부터 모티프를 차용했다. 세상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한 여성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자신과 동일한 처지의 남성을 만나 비로소 정체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삶에 눈을 뜨게 된다. 



티나의 능력은 비범했다. 냄새로 사람의 감정을 쉽게 읽어 들이고, 동물과의 교감에 있어서도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덕분에 그녀의 주변에는 야생동물들이 늘 끊이지 않았다. 이렇듯 특이한 능력을 간직한 데다 외모마저 조금 남달랐던 까닭에 그녀는 그동안 스스로를 염색체 이상의 비정상적인 존재로만 인식해왔다. 


온종일 출입국 심사대에 서서 업무를 봐야 했던 티나. 독특한 외모 탓에 여행객들에 의해 종종 외모 비하의 표적으로 둔갑하곤 했다. 세상과 일정 거리를 둔 채 외롭게 살아온 건 이러한 연유 탓이 크다. 



그랬던 그녀의 일상에 균열이 발생했다. 레보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그가 그녀처럼 보통사람과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티나. 그런 그를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는 이성과는 달리 육신은 어느 순간 그에게로 자석처럼 끌려갔다. 본능이었다. 레보 덕분에 자신이 인간과는 다른 종족인 트롤임을 비로소 깨달은 티나. 그를 통해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 새로이 눈을 뜨게 된다. 


행복감을 만끽하던 꿈같은 일상이 지나가고, 인간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감추지 않던 레보는 이쪽과 저쪽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티나에게 어느 한쪽을 선택할 것을 종용한다.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세상 사람들과 함께 섞여 있을 땐 분명 추한 외모로 다가오던 티나와 레보. 하지만 신기하게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다를 경우 배제하거나 낙인찍기 바쁜 현대인들을 비웃듯이 영화는 그들의 삶의 방식과 사랑의 행위를 스크린 위에 적나라하게 펼쳐놓는다. 이 장면이 다소 놀랍게 다가오긴 하지만 전혀 추하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동안 지나치게 편견에 갇혀 살아왔음을 반성케 한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그어놓은 수많은 기준과 선에 의해 이쪽저쪽으로 편을 나눈 뒤 상대를 편협한 시선으로 가둬두려는 경향이 있다. 비단 정치 영역만이 아니다. 이러한 행위는 일상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뤄진다. 극중 티나나 레보는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분명 비정상적이지만, 트롤 세계에서의 시선은 지극히 정상이다. 마찬가지로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선긋기 내지 편 가르기는 필연적으로 약자인 비주류를 탄생시키고, 이들은 어느 쪽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다 결국 주변부만 끊임없이 배회하게 된다. 사회 곳곳에서 횡행하는, 재미있다며 장난삼아 이뤄지는 ‘인싸’ ‘아싸’ 놀이가 결국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행위로 이어지게 할 수 있듯이 말이다.



영화는 우리 인간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자연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지 않고 파괴하는, 욕망에 찌든 생물로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이익을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 악용하는, 몹쓸 생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에 쉽게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은 같은 인간으로서 상당히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는 인간과 트롤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는 비주류를 통해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꼬집고, 편견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북유럽 스타일의 판타지와 스릴러 장르가 골고루 섞인, 일종의 어른을 위한 동화다.



감독  알리 아바시


* 이미지 출처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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