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아이들 밥그릇 빼앗는 어른들 <스탠리의 도시락>

새 날 2020. 3. 2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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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홀리 패밀리 하이스쿨에 재학 중인 4학년 F반의 스탠리(파토르 A 굽테). 그는 밝은 성격과 다재다능한 끼 덕분에 또래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하는 아이이다. 이를 입증하듯 스탠리의 주변에는 아이들로 늘 북적였다. 하지만 인기 만점의 스탠리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은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다. 말 못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스탠리를 향한 학급 친구들의 의리는 남달랐다. 자신들이 싸온 도시락을 스탠리와 함께 나눠 먹으며 우정을 다졌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의 세계에선 스탠리에게 처해진 현실쯤 대수롭지 않은 듯 보였다. 오히려 아이들을 당혹스럽게 한 건 스탠리가 아닌 교사 베르마(아몰 굽테)였다. 그는 ‘식탐대마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동료 교사의 도시락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이들이 싸온 것까지 호시탐탐 노렸다.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은 특별한 사정으로 학교에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아이들보다 못한 어른들의 면면을 재치있게 풍자, 인도 사회가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 공식 초청되면서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스탠리가 재학 중인 학교엔 급식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까지 끼니를 도시락으로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베르마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동료 교사들로부터 십시일반 얻어먹는 방식이었다. 베르마의 식탐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수업 시간 중에도 식욕을 참지 못해 다른 교사의 도시락에 몰래 손을 댈 정도였다. 그가 아이들의 도시락에 눈독을 들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이들은 점심시간마다 자신들의 도시락을 노리는 베르마의 행태가 몹시 못마땅했다. 의도적으로 그를 따돌렸다. 점심시간만 되면 도시락을 놓고 아이들과 베르마의 치열한 숨바꼭질이 벌어지곤 했다. 하지만 식탐대마왕은 집요한 인물이었다. 결국 그의 촉수에 덜컥 걸려들고 마는 아이들. 격노한 베르마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 늘 친구들과 함께 끼니를 해결해온 스탠리를 겨냥, 학교에 나오지 말라며 엄포를 놓는다. 의기소침해진 스탠리.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  


영화는 스탠리를 비롯한 학급의 아이들, 그리고 베르마라는 악마급 교사를 각각의 축으로 하여 선명한 대결 구도를 그린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할 만큼 열악한 환경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을 어른들이 감싸주거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되레 착취하는 모순된 현실을 학교라는 공동체 속 구성원들의 관계를 통해 풍자한다. 



베르마의 식탐은 아이들이 싸온 도시락의 크기에 정비례했다. 4단 높이의 은빛 도시락은 그를 더욱 흥분케 했다. 물론 극중 베르마는 식탐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어른으로 묘사돼 있다. 수업의 질은 어느 누구보다 엉망이었으며, 아이들을 향한 언어폭력은 일상다반사로 가해졌다. 특히 왼손잡이인 스탠리에게 문제아라며 당장 오른손잡이로 바꿀 것을 종용하는 장면은 경악스러움 그 자체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제자에게 거지라는 표현마저 서슴지 않았던 베르마. 


스탠리가 왼손잡이이고 스탠리의 짝꿍이 오른손잡이인 까닭에 책상을 놓고 줄곧 영역 다툼이 벌어지자 담임교사(디비아 더따)가 나서서 두 사람의 자리를 서로 맞바꿔 슬기롭게 해결하는 장면은 교사이기 전에 어른의 역할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앞서 베르마를 통해 보았던 방식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노래와 군무 퍼포먼스는 작품 속에 발리우드의 DNA가 흐르고 있음을 각인시키는 장면이다. 스탠리를 연기한 파토르 A 굽테는 이 영화의 감독이자 교사 베르마로 분한 아몰 굽테의 아들이다. 극중 두 사람의 날카로운 대립 구도를 생각한다면 이들의 관계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인도에는 약 1천2백만 명에 달하는 미성년 노동자가 존재(2011년 기준)한다고 한다. 가족에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아이들까지 포함할 경우 그 숫자는 무려 5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은 학교 공동체에 소속된 구성원들을 통해 노동에 방치된 인도 아이들의 문제점을 짚고 있다. 


다름을 인정해주고 개개인의 창의성을 개발하여 이를 키우기보다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방식으로 일관해온 우리의 교육. 극중 학교 공동체를 통해 드러난 일부 모순들은 비단 특정 국가나 사회의 문제점이라기보다 바로 우리의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갖는 함의가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감독  아몰 굽테   


* 이미지 출처 : 타임스토리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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