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진정한 믿음이란 '필그리미지'

새 날 2020. 1. 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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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3세기 초. 아일랜드의 한 외딴 수도원에는 그리스도교의 성물이 보관되어 왔다. 성물은 1세기경 그리스도교 선교에 나섰다가 이교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순교자와 관련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십자군 전쟁의 승리를 바라던 교황은 수도사 제랄도(스탠리 웨버)를 이곳 수도원으로 파견 보낸다. 로마까지 성물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에 수도원은 벙어리(존 번탈)와 디아뮈드(톰 홀랜드) 등 몇 명의 수도사들을 선발, 순례길에 동행시킨다. 드디어 장도에 오른 수도사들. 하지만 순례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영화 <필그리미지>는 아일랜드의 한 수도원에 보관돼 있는 성물을 교황의 지시에 따라 수도사들이 로마로 옮기는 여정 중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어떠한 경우보다 진실한 믿음이 요구되는 임무 수행을 통해 인간의 음모와 배신, 그리고 욕망 등을 이야기한다.



잉글랜드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던 노르만인들은 아일랜드의 정복을 위해 세력을 크게 확장하고 있었다. 이들의 무차별적인 살육 행위에 섬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들은 맥없이 스러져갔다. 섬 전체가 신음 중이었다. 수도사들 역시 섬 이곳저곳을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이들의 기세를 결코 피해갈 수 없었다. 



성물의 안전한 이동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 중인 순례자들은 노르만인의 우두머리격인 레이몬드(리처드 아미티지) 무리와 맞닥뜨린다. 수도자들 사이엔 일순간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다행스럽게도 레이몬드는 이들의 장도를 막기보다 되레 호의를 베푼다. 신성한 성물의 존재를 몸소 확인한 레이몬드는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이교도들의 공격으로부터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사들을 풀어 호위도 도맡는다. 


이들의 친절한 배려로 순례길은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이는 함정이었다. 성물을 앗으려는 레이몬드의 치밀한 음모였다. 순례자들은 하루아침에 사지로 내몰린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했다. 과연 이들은 로마에 있는 교황의 손에까지 성물을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인간이 지닌 본성은 위기 순간에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성물을 빼앗기고 일행의 다수가 목숨을 잃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비록 말을 못 하지만 남모르는 사연을 간직한 벙어리 수도사와 오로지 수도원에서만 생활하여 바깥세상을 전혀 모르는 막내 디아뮈드는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를 우직하게 그리고 묵묵히 수행하며 서로에게는 물론, 다른 수도사들의 순례길에도 큰 힘이 되어준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톰 홀랜드가 디아뮈드로, <퍼니셔>의 존 번탈이 벙어리 수도사로 분해 열연을 펼친다. 


영화는 성물이라는 매개를 통해 욕망 앞에 선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한다. 사사로운 탐욕에 매달려 손바닥 뒤집듯 음모와 배신을 일삼거나 하느님의 종을 자처하면서도 행동보다는 말만 앞서고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그와는 대조적으로 고통에 몸부림치고 하나뿐인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어떻게든 주어진 임무를 완성하려는 부류도 있다. 믿음의 차이에서 빚어진 결과일까? 비단 종교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진정한 믿음과 건강한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감독  브렌든 멀다우니  


* 이미지 출처 : 노바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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