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상처 입은 이들을 위로해줄 영화 '해피 어게인'

새 날 2019. 12.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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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사별하고 아들 웨스(조쉬 위긴스)와 단 둘이 사는 빌(J.K. 시몬스). 정든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다. 웨스는 새롭게 바뀐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새로운 여자 친구도 생겼다. 웨스는 레이시(오데야 러쉬)의 불어 숙제를 도우며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아내를 잊지 못해 고통을 겪던 빌도 불어 교사 카린(줄리 델피)과의 교제로 다행히 상처가 조금씩 아무는 느낌이다.


영화 <해피 어게인>은 아내를 잃은 한 남성의 상실감 극복기다. 죽은 아내를 잊기 위해 스스로를 새로운 환경에 내던진 남성, 하지만 우울증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어느덧 생명마저 위협해오는 상황, 이렇듯 부지불식간 닥쳐온 위기를 아들과 함께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세상을 떠난 아내 지니는 빌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소중한 존재다. 빌 스스로도 “‘비포 지니’와 ‘애프터 지니’의 삶이 확연히 달랐다”고 언급할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아내의 공백은 컸다. 그가 정든 집을 떠나온 것도 그곳에 켜켜이 쌓인 추억이 시나브로 되살아나 그의 아픈 구석을 자꾸만 쿡쿡 찔러왔던 탓이다. 아내를 잃은 뒤 생긴 감정은 빌에게 회복하기 힘든 깊은 내상을 입혔다. 


어머니로부터 ‘빛나는 별’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온 웨스. 그는 어머니를 잃고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어머니를 지워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이를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을 수시로 헤집는 어머니와의 소중했던 추억들, 그는 오늘도 그녀의 생전 모습이 기록된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웨스는 까칠한 성격의 동료 레이시가 싫지 않은 눈치다. 웨스 자신에게 유독 냉랭하게 대하며 도도한 척 굴지만, 그녀로부턴 어딘가 끌리는 매력과 동시에 어두운 구석도 엿보인다. 사실 레이시의 가정은 해체 위기에 놓여 있다. 부모의 끝없는 다툼으로 레이시와 그녀의 동생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다. 레이시는 자해를 일삼았다. 더불어 일탈의 유혹에도 쉽게 흔들렸다. 웨스는 그런 그녀를 보듬을 수 있을까? 레이시 또한 웨스의 상처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빌을 향한 카린의 접근은 기대감을 한껏 높인다. 아내의 부재로 생긴 상처를 친절하고 매력적인 그녀가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메워줄 수 있으리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빌은 그녀와 교제하면서 표정도 밝아지고, 마음도 한결 느긋해진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었다. 빌이 그녀와 함께하는 동안엔 아픔을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돌아서고 나면 되레 잠복해 있던 고통이 빳빳이 고개를 들며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더욱 큰 흠집을 내곤 했다. 빌의 우울증은 이미 중증 단계로 접어들었다. 약물로는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다. 



그렇다면 사람 좋고 매력적이기까지 한 카린이 빌에게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걸까? 빌이 예전과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행복을 되찾을 수는 있는 걸까? 



우리는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사실은 남모르는 결핍과 고통을 누구든 한두 개쯤 안고 있기 마련이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다 보면 상처는 자연스레 아물고 슬픔은 반감될 것이다. 내가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면 상대 역시 나의 그것을 채워주듯 말이다. 


아울러 살아있는 사람의 삶은 어떻게든 계속되어야 한다. 상처로 인해 주춤거릴 수는 없다. 행복은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 결국 진정한 행복은 내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다.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갈 세상 모든 이들을 따뜻이 위무해주는 영화다. 



감독  커트 보엘커   


* 이미지 출처 : ㈜앳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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