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아이들 눈높이로 바라보는 세상 '우리집'

새 날 2019. 12. 2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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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인 하나(김나연). 아이의 집은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시도 때도 없이 다투는 부모 때문이다. 하나는 틀어진 부모의 관계를 복원시키기 위해 반찬거리를 사오고 요리를 익혀 직접 음식을 조리하는 등 부단히 애를 쓴다. 하지만 깊숙이 팬 갈등의 골은 좀처럼 메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유미(김시아), 유진(주예림) 자매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하나. 부모가 멀리 일을 나가는 바람에 늘 자매만 남게 된 집에서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러다 보니 관계 또한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 


영화 ‘우리집’은 각기 처지가 다른 두 가정의 아이들이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데뷔작 ‘우리들’을 통해 친구와의 관계를 다뤄 호평을 이끌었던 윤가은 감독이 이번에는 가족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연출했다. 



부모, 오빠 그리고 하나까지, 네 명으로 이뤄진 가정은 지극히 평범했다. 적어도 겉으로 볼 땐 말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부모 사이엔 이미 심각한 균열이 발생한 상태다. 이의 봉합이 여의치 않아 보일 정도로 말이다. 평소 행복한 우리집을 꿈꿔온 하나에게 부모의 불화는 정서적 불안의 단초로 작용했다. 


한편 유미네 가정은 하나네와 달리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부모의 부재로 집은 늘 비워져 있기 일쑤였고, 이사도 잦았다. 자매는 새로운 환경에 가까스로 적응하여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또 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 악순환과 맞닥뜨려야 했다. 이들은 언제쯤 자신들이 꿈꿔온 우리집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될까.



마음을 터놓고 지내면서 어느새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 하나와 유미 자매, 이들은 위기로 내몰린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하나는 부모의 불화를 되돌리려고 가족 여행을 제안하거나 직접 요리를 만들며, 해외로 떠나려는 엄마의 여권과 불륜 상대와의 연결고리인 아빠 핸드폰을 몰래 감춘다. 


더불어 유미네 집을 사수하기 위한 행동에도 나선다. 우선 하나와 유미 자매가 함께 힘을 합쳐 집 안팎과 주변을 깨끗이 닦고 치운다. 집 주인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미네 집은 인근 부동산 사무소에 거래가 의뢰된 상태. 이번에는 집을 일부러 비워두거나 어지럽혀 거래를 방해한다. 아이들만의 앙큼한(?) 전략은 과연 통할까?  



아이들의 연기가 놀랍다. 저마다의 재능을 칭찬해주어야 마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토록 완벽한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역량을 이끌어낸 감독의 연출력 또한 높이 평가해주어야 할 듯싶다. 유진 역의 주예림 양은 너무 앙증맞았으며, 유미와 하나 역을 각각 맡아 연기한 김시아 양과 김나연 양은 어느 모로 보나 빼어났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색감 또한 아이들만큼이나 다채롭고 이뻤다.


겉으로 볼 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은 가정도 사실 차마 말 못 할 고민이나 문제점 따위를 하나둘 안고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네는 부모의 불화라는 정서적인 문제점을, 그리고 유미네는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물리적인 문제점을 각기 안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모든 가정이 크고 작은 문제점을 안은 채 이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게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가정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의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 영화는 철저히 아이들의 시선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하는 까닭에 잘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어른들 역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름 고심하며 노력해왔을 줄로 안다. 물론 어른이라고 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 가능한 건 아니다. 개인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와 직면해야 할 때가 더 많다. 


어쨌거나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들의 방식을 통해 문제해결에 나선다. 저마다 마주하게 되는 문제 앞에서 고민하고 분노하며, 자신의 눈높이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러한 아이들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우리집을 지키고자 하는 아이들의 희망은 종이박스라는 도구를 통해 표출된다. 이를 자르고 오려붙여 거대한 종이집으로 완성시킨다. 아이들은 여기에 알록달록한 색깔을 입혀 각기 자신들만의 집으로 표현한다. 다채로운 색감의 종이집은 아이들 저마다의 마음속에 그려진 이상향의 우리집이자, 이를 들고 떠나는 여정은 우리집을 지키고자 했던 순수한 열정과 고단함을 상징한다. 


현실은 허구속 세상보다 훨씬 냉혹하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따라가는 동안 현실을 잠시 잊게 할지언정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른들은 이를 결코 모르지 않는다. 우리집을 지키려던 아이들은 모진 시련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만큼 성장했으리라 믿고 싶다. 하나가 “우리 밥 먹자”며 가족들을 당차게 불러 모으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관객은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를 보게 된다.



감독  윤가은


* 이미지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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