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철학하는 여성의 삶의 극복 과정 '다가오는 것들'

새 날 2019. 12. 26.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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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근무하는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그녀에겐 지식인으로서의 동료이자 남편 하인츠(앙드레 마르콩)와 두 자녀, 그리고 어머니(에디뜨 스꼽)가 있었다. 어머니는 가족과 따로 살고 있었으나 연로한 데다 공황 장애까지 앓고 있어 늘 나탈리의 손길이 아쉬운 형편이었다. 집과 일터를 오가며 어머니의 돌봄까지 도맡고 있는 그녀. 비록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쁜 나날이었으나 그럼에도 일상의 삶은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귀고 있다”고 실토한다. 뜬금없는 소식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나탈리. 행복하던 그녀의 일상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건 이때부터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의 몸 상태마저 갈수록 악화되어 갔다. 감당하는데 한계를 느낀 나탈리는 결국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낸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행복하고 안정된 일상을 누려오던 한 여성의 삶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지만, 분노하고 좌절하기보다 변화를 수긍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나름의 희망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연기 장인 이자벨 위페르의 섬세하고 빼어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요양원에 맡겨진 나탈리의 어머니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과 작별한다. 남편의 외도가 나탈리의 삶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켰다면, 어머니의 죽음은 이 균열을 조금 더 확장시켜 커다란 파장을 낳는다. 나탈리는 자신의 처지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하루아침에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 현실을 결코 외면하거나 회피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히 받아들였다. 



두 자녀는 모두 장성하였으며, 남편과는 이혼을, 그리고 어머니와는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세상 앞에 홀로 서게 된 나탈리. “나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며 애제자 파비앵(로만 코린카) 앞에서 쿨하게 선언하는 그녀에게선 좌절이나 분노의 감정 따위는 일절 읽히지 않는다. “40세가 넘은 여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며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정작 그녀는 변화된 환경에 아주 잘 적응해 나갔다.


일상에서의 균열이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누군가에겐 굉장히 미세하게 다가오는 사안일지 모르지만, 이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당사자에겐 재난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견고하게 다져온 나탈리는 작금의 충격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않고, 크고 작은 위기의 파고를 적절히 넘어서며 앞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다가오는 것들’로 인해 발생한 빈 자리를 그녀는 오히려 희망으로 가득 채웠다. 이 과정은 무척 섬세하게 그려진다. 아름다우면서도 미세한 결로 완성시킨 감독의 연출과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력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며,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삶이라고. 이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우리는 앞으로도 무수한 고통과 직면해야 한다.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극중 나탈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다가오는 것들’에 쉽게 좌절하거나 분노하기보다 주어진 삶 속에서 변화에 수긍하고 환경에 적응하면서 희망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감독  미아 한센-러브


* 이미지 출처 :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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