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제시카송' 열풍, 영화 기생충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

새 날 2019. 11. 14. 16:23
반응형

영화 ‘기생충’이 북미에서 흥행을 거두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특히 배우 박소담이 부른 이른바 ‘제시카송’이 북미 관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 중이라고 하니 왠지 더욱 반갑다. 


제시카송은 기정(박소담)과 기우(최우식) 남매가 박사장(이선균)의 집 초인종을 누르기 바로 전, 그들이 창조한 허구의 인물인 제시카의 프로필을 암기하기 위해 ‘독도는 우리땅’을 개사하여 다음과 같이 부른 단 6초짜리 노래다. “제시카는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


현재 트위터 등 SNS에서는 이 노래를 패러디한 안무와 리믹스 버전 그리고 악보까지 등장하는 등 ‘제시카 징글’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인터넷 밈화되는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인기 덕분인지 미국의 일부 매체들은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를 것이라는 다소 성급한 예측까지 쏟아내고 있다.



혹여 우리 언론이 실재보다 다소 부풀려 보도했다 해도 이러한 소식은 괜스레 기분을 좋게 한다. 어쨌거나 영화 기생충을 관람한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북미의 반응은 다소 의외다. 사실 제시카송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라고 보기 어렵다. 해당 신 말고도 인상적인 장면은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이는 북미 관객들의 정서가 우리의 그것과 결코 같지 않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하는 사례 아닐까 싶다.


영화 기생충은 경제적 지위가 극명히 다른 두 가정을 끌어들여 겉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본질적으로는 계층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사회 구조를 풍자적으로 이야기한다. 다소 과장된 듯하면서도 현실에서 얼마든 있을 수 있는 극의 흐름으로 인해 관객들은 실소를 터트리다가도 어느 순간 씁쓸한 입맛을 다지게 된다. 이 영화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마디로 ‘웃픈’ 영화다.


영화 기생충 스틸 컷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지배해 온 이래 계층 이동이라는 기회의 사다리는 벌써부터 끊겼고, 부의 대물림이 고착화되면서 자원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번 정부는 ‘공정’을 국정 목표로 삼을 만큼 상대적으로 배분에 나름 심혈을 기울여 온 편이나,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되레 심하게 기울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조국 법무부장관 사태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다.


우리는 영화 기생충에서 보았다. 두 가정 사이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계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두 가정의 계층 차이는 이미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간극이 크게 벌어져 있다. 폭우가 내리자 박사장네 집에서는 텐트를 치고 이를 여유 있게 그리고 운치 있게 즐기는 반면, 반 지하에 사는 기정네 집에서는 빗물이 들이닥치고 하수도가 역류하는 바람에 집안이 온통 쑥대밭이 되고 만다.  



기정과 기우네 가족이 박사장의 가족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조작과 거짓, 그리고 사기 행각 외에는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노력을 통해서는 더 이상 계층 차이를 좁힐 수 없노라고 힘주어 말한다. 현실 세계에서 계층 이동 사다리가 이미 종적을 감췄듯이 영화 속에서도 유일하게 계층 이동을 가능케 하던 지하 통로는 결국 물리적으로 가로막히고 만다. 


이러한 내용의 영화가 북미에서 꽤 반향이 좋다고 하니, 여러모로 기대가 된다. 향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수상 등 영화 자체의 성공도 성공이지만, 그보다는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우두머리 격인 미국에서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담론이 각성을 일으키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모종의 변화로 이끄는 마중물 역할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의 성공을 기원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