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전세 사기, 대책은 없나

새 날 2019. 12. 7. 16:18
반응형

빌라 수백 채를 보유한 집주인들이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잠적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집주인당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이 양산됐다. 이들 피해 세입자의 대부분은 사회 초년생과 신혼부부다. 삶의 새로운 출발선에서 저마다 가꿔온 크고 작은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끔찍한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7일 방송된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뉴스토리> ‘끝나지 않은 전세 사기’ 편에서는 올 한 해 유난히 극성을 부린 전세 사기 사건과 그 이후의 변화된 모습을 짚어보고, 세입자를 보호할 제도적 보완책은 없는지에 대해 취재했다. 


경기도의 한 다가구주택. 취재진이 변호사와 함께 이곳에 사는 한 세입자를 찾았다. 건물은 이미 경매 절차에 들어간 뒤다. 피해 세입자는 집주인과 계약 당시 “집이 경매로 매각될 때 선순위에 의해 배당이 이뤄지고 남은 금액이 없을 경우 배당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혀 들은 바 없으며, 오히려 건물 시세가 높은 만큼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이 집은 안전하다는 말만 전달받았단다.



건물이 경매 절차에 들어간 뒤에야 끔찍한 실상이 드러났다. 10가구의 세입자 모두가 전세였다. 1순위인 금융기관 근저당뿐 아니라 피해자보다 선순위로 확정일자를 받은 전세 보증금도 수두룩했다. 계약 당시 공인중개사는 이러한 사실을 숨겼고, 피해자는 결국 전세금을 건질 수 없는 막다른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세입자는 등기부등본을 일일이 확인하지만 여기에는 기존 세입자가 몇 명인지, 그리고 전세보증금이 얼마인지는 기록돼 있지 않다. 때문에 집주인이나 공인중개사의 말을 100% 신뢰할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자가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앞으로 할 수 있는 건 집주인과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한 민형사상 소송뿐이다.  


경기도 광주의 한 다세대주택, 빌라 건물이다. 이 빌라의 이름은 앞서 살펴본 다가구주택의 이름과 같다. 집주인이 같다는 얘기다. 방송에 출연한 세입자는 전세계약기간이 끝났지만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전세권만 설정해놓은 채 집을 옮겼다고 한다. 피해 세입자는 전세자금대출 7천만 원을 포함해 전세금 1억1천7백만 원을 모두 떼일 처지라 현재 부모님 집에 얹혀 산다. 그녀는 “애 아빠가 그 빚 갚는다고 퇴근한 뒤 밤부터 새벽까지 대리운전을 한다. 지금 이를 악물고 살아가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 집주인의 사기 행각은 두 달 전까지 계속됐다. 자신은 결코 구속되지 않는다며 세입자들을 협박했고 결국 구속됐다. 이 동네에서만 피해자가 수십 명에 이른다. 확정일자에 앞서 금융기관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 빌라가 대부분이어서 세입자들은 한 푼도 건질 수 없는 처지다. 현재로선 구속된 집주인이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피해자와 합의에 나서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화곡동 일대의 집주인들은 이른바 ‘갭투자’로 빌라를 대량으로 사들인 뒤 역전세난이 닥치자 그대로 달아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세입자들은 잠적한 집주인을 찾아다녀야 했다. 문제의 집주인들 가운데 한 명인 강모씨. 빌라 283채를 보유하고 있다. 한 피해 세입자는 그와의 계약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전세금 1억6천5백만 원을 집주인에게 주었는데, 이 가운데 1천5백만 원이 집주인에게서 공인중개사 계좌로 넘어간 것이다. 



집주인은 1억5천만 원에 집을 팔아달라고 요청했고, 공인중개사는 1억7천만 원에 거래된 것처럼 이른바 ‘업계약서’를 쓰자고 집주인에게 얘기한 뒤 1억6천5백만 원에 세입자를 구했다. 세입자가 1억6천5백만 원을 집주인에게 보내자 실매매 금액을 제외한 1천5백만 원을 집주인은 공인중개사에게 건넨 것이다. 집 명의는 임대사업자 강씨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니까 강씨는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빌라를 소유하게 됐고, 공인중개사는 이 거래로 1천5백만 원을 챙긴 셈이 된다. 피해자는 이번 사건을 갭투자에 의한 단순한 전세 피해가 아닌 애초부터 전세금을 반환해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짜고 친 전세 사기 사건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재진이 직접 다닌 전세 피해 현장만 꼽아 봐도 경기도 광주, 서울 화곡동, 경기도 동탄, 충북 청주의 빌라와 아파트 갭투자 피해 그리고 대구, 경북 경산과 경기도 수원의 다가구주택 피해 등 수천 가구에 이른다. 신중권 변호사가 “그동안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지 한 번 터지면 전국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대구의 한 다가구주택. 이곳에 사는 15가구 세입자는 지난 6월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통보를 받고나서야 다른 세입자들도 월세가 아니라 모두 전세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7억5천만 원이 1순위인 금융기관 근저당으로 설정돼 있었고, 15가구 전세 세입자 전체 보증금은 10억 원이나 됐다. 세입자들은 경매로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거의 없으리라 예상했다. 이들은 결국 집주인은 물론 공인중개사에 대한 소송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다. 피해 세입자들은 계약을 하고 난 이후에만 동사무소에서 다른 세입자를 확인할 수 있게 한 현행 제도를 성토했다. 



대구의 임대사업자 장모씨에게 피해를 당한 세입자는 건물 13채, 115가구나 된다. 모두 다가구주택 세입자들이다. 명지대 부동산학과 권대중 교수는 “다가구는 월세 수익을 바라는 사람들이 자기 땅을 헐고 집을 짓는다. 그런데 돈이 부족하다 보니 일부를 전세로 전환한다. 그런 방식으로 건축비를 충당한다. 다가구주택의 피해에 대한 구제 방법은 정부로서도 없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임대사업자 우대 정책이 오히려 대규모 전세 사기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의 집주인이 모두 임대사업자였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동영 국회의원은 “정부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임대사업자 등록을 권장했다. 집을 사서 소형 임대주택을 하게 되면 재산세, 취득세, 종부세 등의 세금을 면제해줬다. 무엇보다 대출을 확대했다“며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꼬집고 나섰다. 정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 임대사업자 7명이 보유한 주택은 무려 3천여 가구에 이른다. 정의원은 “한 사람이 4백, 5백, 6백 채까지 문어발식으로 늘리다 보니, 전국적으로 악성 임대 사업자가 생겼다. 여기에서 피해자가 속출했다”며 전세 세입자 피해를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전세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실질적인 대책은 있는 걸까?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김성달 국장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 전세보증보험 가입 의무화를 주장했다. 그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수수료 부담이 크다. 그 돈은 포기하는 개념이 된다”며 “전세금을 돌려받을 경우에는 그런 것 때문에 설마하고 보험을 들지 않는 경우가 많기는 한데 전체 세입자 3백만 가구라면 그중에 보험을 든 가구는 몇 십만이 안 된다. 그만큼 수수료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만일 의무화가 되면 수수료는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전세보증보험을 의무화하고 집주인이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주인들이 과거의 비정상적인 시장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선진화된 임대차 시장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어야 하는 것이고, 집주인도 정상적이고 안전해진다. 집주인이 여러 상황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을 때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것에 대해 안전장치를 갖는 것이다. 보험을 갖는다는 건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사회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집주인은 수수료만 내면 된다.”


방송에 따르면 올봄과 여름에 직접 인터뷰했던 수십 명의 전세금 피해자 가운데 전세금을 돌려받았다는 피해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이에 대해 김학무 변호사는 “동탄, 광주 등 모든 케이스를 보면 막상 판결 받아서 재산 명시 조치를 해보면 임대인 앞으로 되어 있는 재산이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며, “그렇게 되면 현실적으로 민사 판결을 받아도 결국은 휴지 조각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지금 현 체제에서는 현실”이라고 꼬집는다. 


전세 사기라는 미증유의 아픔을 겪은 세입자. 이들은 방송 제작을 위한 인터뷰조차 힘들어하는 게 현실이다. 그만큼 고통이 크고 깊다는 방증이다. 작금의 제도와 구조 하에서는 집 없는 서민이라면 누가 됐든 비슷한 일을 겪지 말라는 법이 없다. 더 이상의 억울한 일이 발생치 않도록 이를 예방하고 피해자 양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피해자의 절규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희처럼 그냥 당하지 말고 어떻게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분명히 그럴 거예요. 저 사람들 멍청하고 답답해서 계약서도 하나 제대로 못 쓰고 그래서 당한 거라고. 그런데 저희가 절대로 멍청해서 당한 것이 아니에요. 사기꾼이 작정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 이미지 출처 : SBS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