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이 시급한 이유 <쿠르스크>

새 날 2019. 11. 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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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일 맥박이 있었음에도 제때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하고 숨진 희생자가 있었다는 조사 결과가 5년 만에 추가로 공개되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 세 번째 희생자 구조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제기된 것인데요.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세월호 참사 당일 희생자 구조를 위해 현장에 투입된 헬기를 해경 등 현장 지휘관들이 이용했다”며 “희생자 발견과 이송이 늦었고, 사망 판정 시점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면 재수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거세게 불거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월호 특조위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희생자를 싣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동원된 구조헬기가 엉뚱하게도 해경 등 현장 지휘관들을 위한 의전용으로 사용되고, 그 사이 희생자는 숨지고 말았다는 내용인데요. 어처구니없는 해당 보도를 접하면서 문득 떠오른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침몰된 러시아 핵잠수함을 다룬 <쿠르스크>인데요. 영화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출항 직후 예기치 못한 내부 폭발로 침몰하게 됩니다. 선체에 구멍이 뚫릴 정도로 큰 충격이 가해진 잠수함 안에는 많은 승조원이 탑승하고 있었지만 이 사고로 대부분 숨지고 맙니다. 이 와중에 미하일(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등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승조원들은 격실에 갇힌 채 당국의 구조를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평소 훈련한 대로 일정 간격으로 구조신호를 보내면서 러시아 정부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게 됩니다. 격실 내 공기의 양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비축된 비상식량도 점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미하일의 아내 타냐(레아 세이두)는 남편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 하였으나 러시아 당국은 기밀사항이라는 이유로 관련 내용을 자꾸만 감추는 바람에 그녀는 발만 동동 구르게 됩니다. 러시아 정부의 행태가 의심스러운 건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노르웨이와 영국 등 주변 국가가 이번 사고 수습을 돕겠다며 발 벗고 나섰으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를 뿌리친 채 사고 수습을 늦추게 됩니다. 자신들의 기술력으로 얼마든 구조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한데도 말입니다. 다행히 23명의 생존자가 확인되고,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게 됩니다. 



영화 <쿠르스크>는 2000년 8월 12일 바렌츠 해에서 실시된 북해함대 훈련 도중 내부 폭발을 일으켜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실재했던 사건과 그 뒷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쿠르스크호의 승조원은 총 118명이었으며, 이 중 23명이 살아남아 격실에 들어가 있었으나 결국 구조되지 못한 채 전원 사망하고 맙니다. 


극 중 러시아 정부는 영국 제독 러셀(콜린 퍼스)의 구조 지원 등 국제사회가 내민 구조의 손길을 모두 뿌리쳤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기술력으로도 얼마든 구조가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웠으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핵잠수함 침몰이라는 민감한 사안으로 인해 군사기밀이 유출될 우려가 크다는 점과 국가의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의 기술력만으로는 바다 아래 깊숙이 가라앉은 잠수함의 생존자들을 빠른 시간 내에 구조해내기란 사실상 역부족이었습니다. 덕분에 구조는 더디고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수심 108미터 깊이의 쿠르스크호에 갇혀 있던 생존자들은 사력을 다해 버텼으나 점점 임계치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지상에서 미하일의 생존 여부와 구조 과정을 애타게 기다리던 타냐의 속도 타들어가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함께 당국에 열심히 애걸해보고 그도 아니면 항의도 해보았으나 정부의 태도는 한결같았습니다.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이 전부였습니다. 


쓸 데 없는 자존심만 앞세우며 골든타임을 허비한 러시아 정부. 뒤늦게 영국의 러셀 제독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정예요원들이 쿠르스크호 침몰 현장으로 급거 투입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던 생존자 23명 전원이 공기 부족으로 질식사한 뒤였습니다.



국가의 체면과 보안상의 이유로 구조가 늦어지면서 23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쿠르스크호 사건, 그리고 지휘관들의 의전으로 인해 희생자 한 명을 더 늘린 세월호의 사례가 결코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는데요. 열일을 마다하고 일단 위험에 처한 사람부터 구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요?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게 다뤄지고 우위에 있어야 할 사람의 생명이 특정 명분에 의해 그 존엄성이 훼손되거나 보다 하위에 놓이면서 벌어진 사건들이기에 더욱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다가오는 건 비단 저뿐일까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람의 생명이 경시되는 사태가 또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며, 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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