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발칙한 상상 '기방도령'

새 날 2019. 9. 1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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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허색(이준호)은 인물이 훤칠한 데다 기와 예를 두루 갖춰 여인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허색을 돌봐온 기방의 주인 난설(예지원)은 죽은 엄마나 자신의 바람과 달리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그가 영 못마땅하게 다가왔다.

기방의 운영은 갈수록 어려워져 빚을 갚지 못하면 자칫 문을 닫아야 할 판국이다. 바로 그때 허색이 난설에게 기방을 살릴 수 있는 묘책을 제안한다.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자신만의 장기를 살려 기방에 여성들을 술손님으로 받아들이고, 허색 그 자신이 그들을 접대하겠노라는 방안이다.

난설은 속는 셈 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렇게 하여 남자 기생이 된 허색. 그의 남다른 재주가 빛을 발하며 뭇 여성들의 여심을 뒤흔들어놓기 시작한다. 입소문을 타고 조선의 여성들이 하나둘 기방을 찾는 등 허색의 예상은 기막히게 잘 맞아떨어진다. 허색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육갑(최귀화)을 마케팅 자원으로 활용하고, 난설은 더 많은 남자 기생을 영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뒤 허색과 인연을 맺게 된 해원(정소민)을 예전부터 사모해온 양반가의 도령 유상(공명)에 의해 허색이 벌여놓은 사업은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유상은 해원의 마음을 앗아간 허색이 비천한 신분임을 한 눈에 알아차리고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 것이다. 허색이 벌여놓은 사업에 명운을 맡긴 기방과 허색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영화 <기방도령>은 조선시대 기방에서 태어난 기방도령 허색이 망해가는 기방을 살리기 위해 여성들을 위한 기방 사업을 벌이고 자신이 기생 역할을 하면서 빚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을 풍자적으로 그린 코미디 장르의 작품이다.



해원 낭자는 단아한 외모뿐 아니라 당시에는 결코 갖추기 쉽지 않은, 앞선 생각을 지닌 인물이다. 허색이 허세를 부리고 허풍을 떨면서 양반가의 자녀 행세를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가 비천한 신분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허색의 진짜 신분이 탄로가 난 뒤에도 그에 대한 믿음을 결코 거두지 않는다. 신분이 모든 것을 결정 짓는 공고한 신분사회임에도 신분의 고저에 전혀 개의치 않겠노라는 게 그녀의 꿋꿋한 신조였던 셈이다.



허색 역시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내를 요구 받고 욕망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조선시대 여성들에게 짐 지워지거나 처해진 갑갑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여성이 출입하는 기방이라는, 당시로서는 머릿속에서는 물론,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는 발칙한 사업 구상을 현실로 옮겨 뭇 여성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은 것이다.



나이가 든 허색 역은 전노민이, 그리고 노부인이 된 해원 역은 이일화가 각각 맡았다. 두 사람은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에서 부부로 출연하여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영화는 신분 차이로 인해 현실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허색과 해원 두 사람의 아스라한 로맨스를 이야기의 밑바탕에 두고, 당시에는 금기로 치부될 법한 소재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 전혀 새로운 형태의 사극을 빚어냈다. 장르상 가볍게 다가오는 작품이지만, 근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사안들을 극에 녹여 해학과 풍자로 마무리 짓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감독  남대중


* 이미지 출처 : 판씨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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