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재난 탈출 액션극 '엑시트'

새 날 2019. 8. 1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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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고두심)의 칠순을 맞아 용남(조정석)의 일가친척들은 모 이벤트홀에 모여 잔치를 벌였다.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즈음, 도심 한가운데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유독가스 유출 사고가 발생한다. 가스는 순식간에 퍼져 도심 일대를 뒤덮는다. 시민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꼬꾸라지고 만다. 가스의 성분이 온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인체에 치명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용남의 가족은 가까스로 가스를 피해 이벤트홀의 옥상으로 대피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용남의 누나(김지영)가 가스를 흡입한 채 쓰러진다. 이들을 모두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용남은 이벤트홀에서 근무하는 학교 후배 의주(윤아)와의 의기투합 덕분에 누나를 비롯한 가족들을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용남과 의주뿐. 이들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탈출 시도가 본격 진행된다.



용남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이다. 여러 기업체에 이력서를 내보았으나 그럴 때마다 그에게 번번이 돌아오는 건 불합격이라는 멍에였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현실이 비단 용남만의 문제일까? 바야흐로 청년 취업난의 시대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년이라면 대부분이 겪어야 하는, 흡사 통과의례와도 같은 고통에 가깝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취업절벽이라는 장애물과 제일 먼저 친숙해져야 하는 이 암울한 현실을 용남인들 비껴갈 수 없었던 셈이다.



극 중 칠순잔치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공손히 술을 따르는 용남에게 ‘결혼은 했느냐 지금 뭐하느냐’ 물으며 어른 행세를 하려 든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행위가 용남에게만큼은 아픈 구석을 자꾸만 후벼 파는 꼴이다. 근래 명절 때 고향을 방문하지 않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용남은 용남대로 이에 대한 방어 전략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묻기도 전에 용남은 미리 준비한 공통 답변을 읊어대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선 것이다. 용남의 이러한 행동은 재치 있고 우스꽝스럽게 다가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용남은 작금의 팍팍한 현실로부터 탈출을 꾀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그보다 더 시급히 탈출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당장 유독가스라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다행히 용남과 의주는 대학 재학시절 클라이밍 동호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인연이 있다. 그때 익혔던 클라이밍 기술은 그들이 도심 속 재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 특급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물론 제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갖추고 있다 해도 용남이 빌딩을 맨손으로 타고 올라가는 신은 너무 아슬아슬하여 관객들의 온몸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장면이지만 말이다.



일가친척과 지인들까지 모두 불러 모아 개최하는 칠순잔치는 평균수명이 길어진 근래에는 매우 보기 드문 장면 가운데 하나다. 과거 비슷한 행사에 참석한 경험이 있거나 직접 이를 치렀던 분들이라면 실제를 방불케 하는 감독의 생생한 연출에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얼굴에 함박웃음이 절로 그려졌을지도 모른다. 주연은 말할 것도 없고 조연들의 깨알 같은 대사 하나하나까지도 관객들의 마음을 파고들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특히 용남의 어머니와 누이들이 남은 음식을 아깝다며 비닐봉투에 담는 장면은 관객의 배꼽을 잡게 한다.

재난 상황에서 흔히 벌어질 법한 신파적 요소를 빼고,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며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소재와 웃음거리, 그리고 탈출 과정의 짜릿한 액션으로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 영화적 재미를 추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거들자면 용남은 물론, 이 시대 청년들에게 가장 시급하게 다가오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취업절벽의 시대로 대변되는 작금의 취업난으로부터 시원하게 탈출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감독  이상근  


* 이미지 출처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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