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인간의 내면 파헤친 미스터리 '누구나 아는 비밀'

새 날 2019. 7. 26. 11:58
반응형

동생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친인척들이 고향으로 몰려들었다.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도 모처럼 고향을 방문하게 된다. 간만에 치러지는 결혼 예식은 마치 인력이라도 작용하는 양 그동안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던 형제자매들을 고향으로 일제히 끌어 모으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형제들의 얼굴에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이다. 엄숙한 분위기의 성당에서 치러진 예식은 더없이 화려하였으며, 새로운 삶을 약조한 동생 내외에겐 수많은 하객들의 축복이 더해졌다. 이어진 피로연은 축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흥에 겨웠고, 참석자들은 무리를 이뤄 함께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며 분위기에 취해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다. 피로연장 한 쪽에서 다른 이들처럼 축제를 즐기던 라우라의 딸 이레네(칼라 캄프라)가 갑자기 피로를 호소하는 바람에 급히 침실로 옮겨져 휴식을 취하던 도중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이레네는 온데 간데 없고, 그녀가 누워있던 침대 위에는 과거 납치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결혼식 파티 도중 납치된 딸... 가족조차 서로 의심하는 사람들

흥겨움에 한창 들떠 있던 결혼식 피로연장은 이레네의 실종 소식과 더불어 분위기가 일순간 싸늘하게 가라앉고 만다. 이윽고 라우라에게 날아든 문자메시지 한 통. 이레네가 누군가에게 납치되었으며,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질 경우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임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라우라는 딸의 납치 소식에 얼굴이 사색이 되고 만다.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그녀를 납치해간 것일까?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동생의 결혼식 피로연 도중 라우라의 딸이 누군가에게 납치된 뒤, 딸을 찾는 과정에서 과거의 진실이 차례로 드러나게 되고, 이로 인해 부각되는 인간의 내면을 현미경처럼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되는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영화 <세일즈맨>(2017),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등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마다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는 탁월한 연출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번 작품 역시 한 여성의 납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날카롭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전작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레네의 안위 때문에 납치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해하는 라우라와 친지들. 이들은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 가운데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들부터 순차적으로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고향땅에서 포도 농장과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라우라의 옛 연인이자 그녀와 오랜 친구 사이이기도 한 파코(하비에르 바르뎀)도 딸을 잃어버려 애를 태우는 라우라를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납치범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파코가 납치범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라우라, 그리고 라우라의 가족들과 얽힌 관계가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고, 이로 인해 사건은 조금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인간의 내면 파헤친 미스터리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납치범이 특정되지 않자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게 되고 의심의 눈초리는 어느덧 내부를 향하기 시작한다. 급기야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가족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기 시작한 것이다. 납치범이 딸의 석방 조건으로 거액을 요구하고 나선 시점이 바로 이의 분기점이다. 납치범의 요구 조건과 액수가 구체적으로 밝혀지면서 사람들의 눈빛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결국 돈이 이번 사건의 열쇠일까?



범인이 외부가 아닌 그들 내부에 있을 것이라는 관측에 점차 힘이 실리자 서로를 향한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그에 따라 장르적 긴장감도 덩달아 높아간다. 일반적으로 가장 신뢰했던 이들이 의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 그로 인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기 마련이다. 결혼식 피로연 때까지만 해도 더없이 끈끈했던 가족 공동체였건만, 납치 사건으로 인해 이들 사이에 의심이라는 괴물이 파고들면서 어느덧 가장 믿을 수 있는 관계마저도 쉽게 균열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불신과 의혹이 발화하여 본격적으로 타오르는 순간 인간관계에 어떠한 균열을 초래하게 되는가를 극명히 보여준다.

미스터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시선은 의문투성이인 범인의 실체를 쫓는 일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게 된다. 영화 제목 그대로 누구나 아는 비밀 때문일까? 오히려 어느 누구에게나 내면에 잠들어있을지 모르는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소환하고, 이로 인해 더없이 끈끈했던 관계마저 쉬이 헝클어뜨리는 사람들의 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된다.



당장 돈이 아쉽게 되자 수십 년이나 지난 과거의 일을 들먹거리거나 묵혀온 진실과 아픔을 들춰내어 끊임없이 서로를 괴롭히는 사람들.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흡사 막장 드라마를 빼닮은 듯한 이 황당한 사건들은 영화가 미스터리 장르라는 사실을 문득 잊게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결국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들춰내고, 이를 통렬하게 비트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   


* 이미지 출처 : 오드 AUD, 티캐스트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