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엄마와 가족 역할 곱씹어보게 하는 영화 '당신의 부탁'

새 날 2019. 6. 2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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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불의의 사고로 잃은 32살의 효진(임수정). 그녀는 동네에서 친구 미란(이상희)과 함께 조그마한 보습학원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여성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에 16살 종욱(윤찬영)이 나타난다.

종욱은 죽은 남편의 아들이다. 효진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러한 관계였다. 그동안 종욱의 양육을 맡아 온 지인이 형편상 아이를 더 이상 돌볼 수 없게 되자 그녀에게 양육을 부탁하게 된 것이다. 효진은 얼떨결에 이를 받아들인다. 효진과 종욱의 어색한 동거는 이렇게 시작된다.



남편 잃은 32살의 여성.. 그렇게 엄마가 된다

영화 <당신의 부탁>은 2년 전 남편을 사고로 잃은 32살의 여성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죽은 남편의 16살짜리 아들을 양육하면서 빚어지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스크린 위에 옮긴 작품이다.



극 중 효진의 일상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다. 매사에 의욕이 없으며, 몸은 천근만근일 때가 많다. 괜스레 피곤하기만 하다. 학원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처지를 핑계로 이참에 차라리 학원을 접을까 하는 생각에 골몰하곤 한다. 효진 스스로는 아니라며 애써 고개를 저어보지만 아무래도 남편을 잃은 상실감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한 기색이 역력하다.

효진은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다. 유산이라는 쓰라린 경험만 맛봤다. 그런 그녀에게 느닷없이 16살의 아들이 생긴 것이다. 효진에게 엄마로서의 역할은 매우 낯설고 고된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입에 아들이라는 호칭이 잘 들러붙을 리 만무했다. 종욱이라고 하여 다를까? 종욱은 일찍이 친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계모마저도 종욱이 어린 시절 그의 곁을 떠나고 만다. 엄마에 관한 한 상처투성이인 종욱의 입장에서 볼 때 효진은 엄마라기보다 그저 ‘당신’이었다.



이젠 법적인 엄마가 되어 자신을 돌보게 된 효진에게 ‘당신’이라 호칭하던 종욱. 그는 그와 반대로 임신한 주미(서신애)에게는 ‘우리’라 부르며 연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혈육이 아닌 관계에서는 원심력이, 혈육 관계에서는 구심력이 작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엄마와 가족 역할 곱씹어보게 하는 영화

영화 <당신의 부탁>에는 다양한 유형의 엄마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배로 직접 낳고 양육까지 책임진 엄마, 아이를 낳기만 하는 엄마, 그리고 남이 낳은 자식을 양육하기만 하는 엄마. 이들은 처지와 입장이 각기 다르지만 어쨌든 엄마라는 공통분모 안에 함께 놓여있다. 영화는 효진과 종욱이 동거하면서 빚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다양한 엄마의 모습을 비추고,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혈육으로서의 엄마가 아닌 폭넓은 엄마로서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게 한다.



효진은 그녀의 어머니(오미연)가 자신에 대해 일종의 운명론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들 때마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딸이 벌이는 일마다 토를 달거나 매사에 불만을 토로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효진은 짐짓 못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효진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종욱에게도 어머니와 비슷한 양육 태도를 드러낸다. 모성애일까? 그렇다면 혈육에 의한 모성애만이 아니라 모든 엄마의 모성애는 비슷한 것일까? 효진은 그렇게 비로소 엄마가 되어가는 것일까? 효진과 종욱 사이에도 이제 구심력이 작용하게 되는 것일까?



영화 <당신의 부탁>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새롭게 맺은 가족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빚어지는 치유 과정을 절제 있고 담백하게 풀어냈다. 덕분에 긴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엄마와 가족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감독  이동은


* 이미지 출처 : CGV 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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