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돈은 탐욕에 불을 지피는 도구 '돈'

새 날 2019. 6. 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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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한 화이트칼라를 꿈꾸며 어렵사리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한 조일현(류준열). 그는 안타깝게도 이 살벌한 삶의 현장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고전 중에 있는 인물이다. 성격도 소심한 데다 이렇다 할 연줄마저 없으니 뚜렷한 실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회사 선배(이민재)의 귀띔을 통해 함께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 ‘번호표(유지태)’의 존재를 알게 된다.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는 순간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조일현. 그와 동시에 그의 수중에는 뭉칫돈이 들어오게 된다. 조일현에게는 뜻밖의 잭팟이 터진 셈이다.

영화 <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돈이 거래되고 있는 여의도 금융가에 갓 입성한 신입 주식 브로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돈과 관련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장현도의 동명 소설이 이 영화의 원작이다. 



증권가에 갓 입성한 브로커.. 그에게 뭉칫돈은 인생역전의 기회일까

극 중 조일현과 대척점에 위치한 인물은 입사 동기 전우성(김재명)으로 그려져 있다. 그는 잘생기고 훤칠한 외모 덕분에 어디에서건 자신감이 넘쳐흐르며, 집안도 부유해 조일현을 늘 열등감 속으로 빠뜨리는 인물이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돈에 대한 조일현의 집착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적이 전무할 땐 회사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에 불과했던 조일현, 번호표와 인연이 닿은 뒤 실적이 치솟으며 부서 내 수위를 달리자 주변의 시선도 그에 걸맞게 덩달아 변모한다. 실적판에 찍힌 숫자의 볼륨에 따라 울거나 웃는 사람들. 그러니까 적어도 이곳 세상에서는 돈이 갑임이 분명한 듯싶다.

실적판에 찍힌 숫자가 클수록, 통장 잔고에 쌓인 액수가 많아질수록 조일현의 어깨에는 점차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시골에서 평생 동안 복분자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아온 부모님께 용돈을 쥐어드리며 앞으로 ‘돈 걱정 따위는 하지 말고 택시 타고 다니라’던 그의 조언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모든 측면에서 자신을 주눅 들게 했던 입사 동기 전우성도 이미 극복 대상이 아니었다. 조일현은 돈의 위력에 흠뻑 취해갔다.



그런데 이렇듯 돈의 맛을 실감하고 이에 듬뿍 취해 있던 조일현의 앞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난다. 바로 번호표의 뒤를 캐던 이른바 금융감독원의 사냥개 한지철(조우진)이었다. 그는 주식시장을 불법적인 방식으로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 작전세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그들의 행방을 뒤쫓는 인물이었다.

돈은 탐욕에 불을 지피는 도구

번호표와의 접촉이 늘어날수록 그에 비례해 조일현의 통장 잔고는 두둑해져갔다. 하지만 그만큼 그를 조여 오는 한지철의 압박 역시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조일현 앞에 던져진 뭉칫돈, 이는 과연 그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가 되어줄까?

빼어난 류준열의 연기력을 다시 한 번 체감케 하는 작품이다. 물론 베테랑 조연 배우들의 도움 없이는 어려운 결과물이었겠으나 거의 원톱에 가까울 만큼 비중이 큰 작품마저도 이렇듯 거뜬히 소화하는 것을 보니 그의 연기에 짐짓 물이 올라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돈은 탐욕에 불을 지피는 도구다. 극 중 이미 평생 쓸 돈을 갖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욕심을 부리는 번호표를 향해 조일현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궁금해 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끝까지 내놓지 않은 채 관객의 몫으로 돌리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더 갖고 싶게 만들며, 돈 앞에서 만큼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도록 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돈을 매개로 인간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고 그 모습이 혹시 우리 자신은 아닐까 싶어 괜스레 돌아보게 만드는, 씁쓸한 작품이다.



감독  박누리


* 이미지 출처 :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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