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육아는 여성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몫 '툴리'

새 날 2019. 6. 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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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손이 많이 가는 첫째 딸과 여느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둘째 아들을 키우고 있는 마를로(샤를리즈 테론)는 양육 때문에 가뜩이나 정신이 사납고 심신이 피폐해있는 상황에서 셋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다. 배가 불러오고 출산 일자는 시시각각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나마 셋째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이므로 아직은 견딜만했다. 셋째가 태어남과 동시에 그녀의 일상은 곧 지옥으로 돌변하게 된다.

마를로보다는 경제적 형편이 조금 나았던 오빠 크레이그(마크 듀플라스)가 그녀에게 야간 보모를 지원해주겠노라 제의해왔다. 하지만 마를로는 평소 육아는 엄마 스스로 해야 한다는 소신이 무척 강한 여성이었기에 이러한 호의를 극구 뿌리친다.

아기를 돌보느라 마를로의 밤과 낮은 완전히 뒤바뀐 처지.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모유를 먹이며 보챌 때 달래주는 등 무한 반복되는 그녀의 육아 과정은 남편 드류(론 리빙스턴)의 무관심 속에서 하루 종일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육아로 인해 심신이 극도로 예민해지면서 마를로는 어느덧 평상심마저 잃게 된다.



밤과 낮의 구별 없이 온종일 육아에 시달린 탓에 아이들에게 기울여야 하는 관심도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고 덕분에 집안은 점점 엉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독박육아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하던 그녀. 고민 끝에 오빠가 제의해온 야간 보모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독박육아에 시달리던 그녀.. 결국 야간 보모를 신청하다

마를로를 찾아온 보모 툴리(맥켄지 데이비스)는 아직은 앳된 처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족 이상으로 살갑게 마를로와 아기를 돌봐주었다. 덕분에 독박육아로 일상이 붕괴됐던 그녀의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금씩 변모하기 시작한다.



영화 <툴리>는 남편의 도움 없이 이른바 독박육아를 하면서 아이 셋을 양육하던 마를로가 도저히 이를 버텨낼 재간이 없자 그녀의 오빠가 알선해준 야간 보모를 집안에 들인 뒤 겪게 되는 일상의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툴리는 육아뿐 아니라 집안에서 발생하는 일과 관련된 것들은 무엇이든지 척척 해냈다. 그녀가 다녀간 다음 날이면 집안의 변화가 뚜렷했다. 음식이 만들어져 있거나 심지어 집안 곳곳의 묵은 때까지 말끔하게 사라져있는 등 툴리는 단순한 보모 그 이상임이 분명했다.



덕분에 마를로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던 육아 전쟁만큼은 이제 한시름 놓게 됐다. 육아로 인해 밤과 낮이 뒤바뀌면서 신체 리듬에 혼란을 겪었던 상황도 툴리 덕분에 이제는 더 이상 염려할 필요가 없게 됐다. 툴리의 존재는 마를로에겐 우렁각시에 다름 아니었다.

둘째 아이는 유달리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인 터라 아이 둘만으로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새로운 아기의 탄생은 마를로로 하여금 슈퍼맘이 되어줄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더구나 현실에서의 양육은 이 영화 속 마를로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 여성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아내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저 게임 등 평소 자신이 즐기던 일에만 몰두할 뿐이다.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오롯이 여성 혼자 극복해야 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육아는 여성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몫

영화는 마를로의 육아가 단순한 어려움이 아닌 일종의 전쟁과도 같은 상황임을 반복되는 그녀의 일상을 통해 호소하고 있다. 양육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를 이 영화는 마를로가 겪는 변화 과정을 스크린 위에 비추며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녀의 양육은 전쟁에 다름 아니었다. 꼼짝없이 독박육아 처지로 내몰린 마를로가 이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보모를 신청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러한 결과가 비단 영화 속 마를로에게만 국한되는 일일까? 아기 양육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스스로의 삶은 점차 뒷전으로 밀리고 온전히 가족만 생각하는 이 세상 대부분의 엄마들에게 있어 양육이란 공통적으로 다가오는 어려움 아닐까?



마를로로 분한 배우 샤를리즈 테론은 극 중 현실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실제로 22kg 이상이나 살을 찌웠다고 한다. 아울러 모유 수유를 포함한 모든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연기했다고 하니 그녀의 연기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가를 가늠케 한다. 강인한 여전사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그녀는 어느덧 독박육아와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어느 누구보다 현명한 엄마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육아란 여전히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이는 작금의 저출산 및 결혼 기피 현상을 낳는 기제로 작용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영화는 이들에게 육아 과정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성의 물리적인 변화와 정신적인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육아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육아란 여성 혼자의 몫이라기보다 가족 구성원 그리고 사회가 모두 함께 나서야 하는 사안임이 분명하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필히 관람해야 하는 영화다.



감독  제이슨 라이트맨


* 이미지 출처 : 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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