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아이들에게 투영된 어른들의 현재 모습 '플로리다 프로젝트'

새 날 2019. 6. 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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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에 위치한 디즈니월드의 건너편에는 ‘매직 캐슬’이라는 모텔 하나가 서있다. 흰색과 보라색으로 덧칠된 이곳은 겉으로 볼 땐 형형색색의 주변 풍광과 꽤나 잘 어울리는 까닭에 이질감 따위는 결코 느껴지지 않는다. 이곳에는 무니(브루클린 프린스)라 불리는 6살 소녀와 또래 친구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가 살고 있다. 호기심 가득한 두 꼬마는 늘 붙어 다니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시시콜콜 참견하거나 그들만의 놀이 방식에 심취하곤 했다.  

무니를 돌보는 사람은 미혼모인 핼리(브리아 비나이트)였다. 핼리는 고정된 일자리가 없었던 까닭에 매일 패스트푸드점으로 일하러 나가는 그녀의 이웃 애슐리(멜라 머더)의 아들 스쿠티를 하루 종일 무니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그의 반대급부로 애슐리로부터 패스트푸드점 음식 몇 가지를 얻곤 했다.

핼리는 아이를 양육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인물이었다. 핼리의 행동은 어른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였다. 무니와 함께 있을 땐 누가 어른이고 아이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철이 없는 행태를 드러내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무니는 엄마의 영향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었다.



화려함 일색의 디즈니월드 건너편에 사는 악동들의 이야기

무니는 어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천방지축 내키는 대로 행동하기 일쑤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위 혹은 사고를 저지르고서도 이를 모른 척 시치미를 떼거나 감쪽같은 거짓말로 발뺌하며 주변 사람들을 눈속임하곤 했다. 보통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때 무니는 영락없는 못된 아이였으나 당사자는 정작 그러한 의식조차 없이 그맘때 아이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그녀만의 방식대로 천진난만하게 놀이에 심취하고 있는 듯했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미국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건너편에 위치한,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허름한 모텔 ‘매직 캐슬’에 사는 악동 무니와 그녀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모텔 매직 캐슬은 집이 없어 임시 거처로 삼은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상징적인 곳이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너편에 위치한 화려함 일색의 디즈니월드에만 관심을 두는 까닭에, 아울러 외관상 잘 포장된 덕분에, 코앞에 있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니를 양육하고 있는 핼리 역시 매일 매일의 거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 인물이다. 특정한 직업이 없고 쉽사리 돈을 마련하지 못하는 까닭에 하루하루가 불안함의 연속이다. 하루 숙박료가 35불에 불과한 매직 캐슬에서 조차 언제 쫓겨날지 몰라 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처지이다.



무니의 단짝 친구 스쿠티의 엄마 에슐리 역시 상황은 핼리와 엇비슷했다. 아이를 혼자 양육하는 데다 하루 종일 일을 하느라 스쿠티는 무니 엄마에게 맡겨진 채 거의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부모의 살뜰한 보살핌으로부터 소외되기 일쑤였다. 코흘리개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저지르는 놀이는 장난 수준을 벗어난 경우가 허다했다.

핼리는 무니와 함께 디즈니월드를 찾는 이들에게 향수를 판매하며 간간이 푼돈을 마련하고 있었다. 물론 그 또한 여의치 않은 경우가 더 많았지만 말이다. 그녀는 결국 해서는 안 될 곳에 손을 대고 만다.



아이들에게 투영된 어른들의 현재 모습

이 영화는 여러 측면에서 올해 개봉한 영화 <가버나움>을 떠올리게 한다. 한 블록만 벗어나면 화려한 도회지가 펼쳐지지만 정작 소년이 사는 곳은 칙칙함 일색의 빈민가. 건너편에 위치한 디즈니월드의 휘황찬란한 면면과는 달리 하루 벌어 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매직 캐슬’.

먹고 살기 바쁜 부모들의 방치로 학교에 다니지도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이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전쟁놀이를 일삼거나 마약주스를 만들어 판매하는 영화 <가버나움> 속 아이들의 모습은, 몰려다니면서 남의 차에 침을 뱉거나 버려진 펜션에 불을 지르고도 죄책감은커녕 어른들을 감쪽같이 속이려드는 아이들의 그것을 고스란히 빼닮았다.

영화 <가버나움>에서 주인공 자인은 온갖 역경 속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어린 아이를 직접 거두어 양육하면서 부모와 어른들의 무책임함을 강하게 꾸짖는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핼리가 제대로 된 양육 환경을 마련하지 못하는 바람에 국가가 무니를 보호하겠다고 나선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았던 무니. 그래서 더욱 안쓰럽게 다가왔던 무니. 앞으로 그녀가 맞닥뜨리게 될 세상은 과연 어떤 색상일까?



디즈니월드로 대변되는 세상은 누가 보더라도 화려함 일색이다. 무니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색상만큼은 온통 무지개 빛이다. 그 테두리 내에서 살아가는 무니는 꾸밈이 없으며 한없이 맑다. 만약 무니와 아이들의 행위가 거슬리거나 못마땅하게 다가온다면, 이는 전적으로 어른들의 잘못이다. 아이들의 현재는 어른들의 그것이 고스란히 투영된 결과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 세상이 화려할수록, 아이들의 모습이 해맑을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더욱 슬프고 가슴 절절하게 다가온다.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 힘을 온전히 발휘한 탓일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 지긋지긋한 매직 캐슬을 벗어나 디즈니월드를 향해 무작정 달려가던 무니와 젠시(발레리아 코토)의 뒷모습 속에서 관객들은 막연하게나마 밝은 희망 따위를 엿보았기 때문이 아닐는지.



감독  션 베이커


* 이미지 출처 : 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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