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계층 차이에 의해 빚어진 희비극 '기생충'

새 날 2019. 6. 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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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송강호)의 가족 구성원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모두가 백수의 처지에 놓여있다. 피자 가게의 포장 용기를 접는 등 허드렛일을 하며 푼돈을 마련하는 게 이들이 경제 활동을 통해 수입을 얻는 유일한 통로였다. 통신비를 마련할 돈이 없어 타인의 무선랜 신호를 잡아 이를 이용하는 등 이들의 생활은 궁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남 기우(최우식)의 친구가 해외로 떠나면서 자신이 담당하던 과외를 당분간 기우에게 맡기기로 한다. 과외를 의뢰한 박 사장(이선균)의 가정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부를 일궈낸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젊은 부자였다. 그의 집은 기택의 그것과 단적으로 비교가 될 만큼 크고 화려했다. 기우는 친구의 신뢰 덕택에 큰딸 다혜(현승민)의 영어 학습을 도맡게 된다. 


박 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는 한 번 신뢰한 상대의 말을 쉽게 믿는 경향이 컸다. 기우는 이러한 특성을 간파했다. 이를 이용하여 박사장의 아들 다송(정현준)의 미술 교사로 자신의 동생 기정(박소담)이 적임자라며 그녀를 추천하기에 이른다. 박 사장과 연고가 전혀 없던 기택의 가족은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둘 박 사장의 가정에 발을 디디기 시작한다.

 


계층 차이에 의해 빚어진 희비극


영화 <기생충>은 서민 계층에 해당하는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우연한 기회에 부유한 계층의 가정에 각기 일자리를 빌미로 발을 디딘 상황에서 빚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코믹하게, 때로는 씁쓸하게 그린 작품이다.


기택과 박 사장이 각기 어떠한 계층에 위치해 있는가는 그들이 소유한 집의 형태로 대변된다. 물론 기택의 집과 박 사장의 집은 규모 면에서나 구조 면에서 외견상 큰 차이를 드러낸다. 다만, 단순히 집의 외관만으로 계층의 차이를 대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일임이 분명하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간극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기택의 집은 저지대에 위치해 있는 데다가 반 지하 구조다. 주변은 비슷한 형태의 집들과 상가로 즐비하다. 생활 소음을 피해가기 어려운 구조다. 사생활과 관련해서는 더욱 취약하다. 취객들이 툭하면 그의 집 주변에서 노상 방뇨를 일삼는 등 주변의 좋지 않은 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돼있는 실정이다. 


반면 박 사장의 집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잘 가꿔진 정원과 높은 담벼락이 둘러쳐진 덕분에 외부로부터 방해를 받을 만한 요소가 일절 없었다. 덕분에 안정된 거주 환경 속에서 그의 가족 구성원들은 일상을 매우 안락하게 누렸다.

 


두 집을 고도차로 분석해보면 이들의 계층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기택의 집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영락없이 물에 잠기곤 했다. 집 주변 일대가 모두 침수되어 물난리를 겪게 되는 것인데, 반 지하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취약성으로 인해 기택의 집은 더욱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계층차


그에 반해 상당히 높은 지대에 위치한 박 사장의 집은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도 끄떡없었다. 예술가의 손길에 의해 견고하게 지어진 아름다운 그의 가옥은 아늑한 환경을 연출했다. 저지대에 위치한 이들이 물난리를 겪을 때 이들은 그들만의 안온한 쉼터에서 되레 운치 있는 분위기를 만끽했다. 


 

고지대와 저지대 사이에 놓인 무수한 계단 역시 확연한 계층 차이를 의미하며, 이를 오르내릴 때 수반되는 물리적 고통과 어려움은 계층 사이의 수직적 질서를 상징한다. 각 계층의 활동 무대가 각기 다른 이상 사회적 지위가 판이한 이들이 상대와 접촉할 기회, 그러니까 현실에서의 접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렇듯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부지불식간 형성된 현실 속 계층의 차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영화 <기생충>은 오늘날 더욱 공고하게 다져진 계층 간의 극명한 차이를 묘사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시킨다. 그래서 씁쓸하다.

 


현대 사회는 명시된 계급이 없다. 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연스레 나뉜 계층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만이 존재할 뿐이다. 영화는 평지에서 사는 중산층은 철저히 배제시키고, 평지보다 낮은 지대에서 사는 경제적 하류 계층과 평지보다 고도에서 사는 상류 계층을 끌어들여 계층의 차이를 더욱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실제로 벌어질 법한 스토리를 유쾌하거나 비극적인 방식으로 비틀고, 현실 사회에 존재하는 계급의 차이를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력이 더해지고 촘촘하게 얽힌 서사는 관객에게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해준다. 어이없고 황당한 에피소드는 헛웃음을 유발해오고, 비극적인 이야기는 안타까운 감정이 가장 먼저 밀려들게 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실제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계층 차이.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러한 현실을 각인시키겠노라 작정한 듯 한층 집요하게 파고든다. 관람 후 뒷맛이 영 개운치 못하고 씁쓸한 여운이 남는 건 아마도 이러한 연유 탓이 클 것 같다.



감독  봉준호


* 이미지 출처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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