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프랑스판 리틀 포레스트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새 날 2019. 5. 31.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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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의 갑갑한 생활이 싫어 세계여행을 떠났던 장(피오 마르마이)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10년 만에 고향 부르고뉴로 돌아오게 된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와이너리(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를 물려받기 싫어 무작정 떠났던 고향이다. 물론 그가 갑갑하게 여겼던 고향이 10년이 지났다고 하여 달라졌을 리는 없다. 포도와 포도밭 그리고 와이너리와 함께하는 부르고뉴에서의 삶은 한결같았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와이너리는 이제 둘째 줄리엣(아나 지라르도)이 도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막내 제레미(프랑수아 시빌)는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으며, 장인의 와이너리 일을 돕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장은 고향에서 1년 동안 머무르면서 이들 동생과 함께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드는 전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고향이 싫어 무작정 떠났던 장남이 10년 만에 부르고뉴로 돌아와 동생들과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어느덧 자신도 와인처럼 숙성되고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와인과 함께하는 세 남매의 성장담

영화는 세 남매에게 닥친 어려움을 차근차근 극복해내는 과정을 그린 성장담과 함께 이들이 1년 동안 정성 들여 포도를 가꾸며 수확하고 와인을 제조하는 모든 과정을 스크린 위에 번갈아 비춘다.

둘째 줄리엣과 막내 제레미는 장이 돌아온 사실이 무척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장례식조차 참석하지 않고 연락을 끊어버린 그가 야속했다. 장은 장대로 자신이 보낸 소식에 답변을 보내오지 않은 아버지가 섭섭했다. 아버지와의 껄끄러운 관계도 그렇거니와 형제 사이의 크고 작은 갈등과 균열은 여전했다.



극 중 장은 아들 벤을 침대에서 재우다가, 문득 어릴 적 자신을 재우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과 똑같은 형상이 아닌가. 자신에게 부치지 않은 아버지의 편지를 뒤늦게 발견한 장. 그는 어릴 적 장남인 자신에게 유독 모질게 대했던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아울러 동생들과 함께 1년 동안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들어가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한 가족애를 느끼게 된다.



포도밭을 가꾸던 장은 어느 날 “자신이 땅의 일부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장은 불과 1년 만에 고향인 부르고뉴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 비교해 크게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깃들어있는 이곳에서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상처투성이의 자신을 보듬으며 비로소 참 자아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판 ‘리틀 포레스트’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을 꼽자면 아름다운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사시사철 풍광이 스크린 위에 가득 펼쳐진다는 점과 포도나무의 관리부터 포도를 수확한 뒤 이를 직접 발로 밟아 압착하여 즙을 짜내는 일, 그리고 발효와 숙성 기간을 거쳐 마지막으로 시음까지 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스크린 위로 와인 향이 뚝뚝 묻어나온다.



참고로 부르고뉴는 프랑스 중동부에 위치한 세계적인 와인 명산지다. 프랑스 서남부 지역의 보르도와 함께 와인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부르고뉴 와인은 강하고 강렬한 맛을 자랑하는 보르도 와인과 달리 섬세하면서도 복합적인 맛을 선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극 중 자신들이 직접 제조한 와인을 시음하던 장과 제레미가 “줄리엣과 똑같아”라고 말하는데, 이는 부르고뉴에서 제조된 와인 맛이 여동생 줄리엣처럼 복잡하고 섬세한 맛임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장은 부모님이 운영하는 와이너리와 시골 생활이 싫다며 세계여행을 훌쩍 떠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안착한 곳은 호주이며, 이곳에서 아내와 함께 또 다른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장에게 있어 와인은 어쩌면 운명 공동체와도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장은 와인을 통해 마침내 자신과 화해하고, 아내와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등 자신도 와인처럼 숙성되고 성장한다. 이 영화가 프랑스판 ‘리틀 포레스트’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향 좋은 와인과 함께 관람하면 더없이 좋을 것 같은 작품이다.



감독  세드릭 클라피쉬


* 이미지 출처 : 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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