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5.18 비밀요원, 39년만의 최초 증언

새 날 2019. 3. 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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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지난달 8일 국회에서 극우논객 지만원씨를 초청하여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를 개최하고 “북한군 개입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며 전두환은 영웅”이라는 등의 망언을 일제히 쏟아냈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음은 말할 것도 없다.

2017년 4월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이라고 기술하여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지난 11일 광주 법정에 선 전두환씨는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39년만에 광주에 소환된 전두환씨는 1995년 골목성명 이후 다시 피고인 신분이 되었으나 “5.18은 폭동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거나 “광주 씻김굿의 제물이 됐다”는 등 기존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광주시민은 물론 전 국민들을 분노로 들끓게 했다.



5.18 비밀요원들, 39년만에 입을 열다

5.18 민주화운동은 역사적, 법적 판단이 모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정작 가해자와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39년간 폄훼 행위를 지속해온 사안이다. 지난 14일 방송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5·18 비밀요원, 39년만 최초증언!’ 편에서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비밀리에 활동했던 특명요원 두 명을 지난 1년 동안의 오랜 추적 끝에 설득, 39년만에 최초로 관련 증언을 내보냈다.



5.18 당시 광주에서 빚어진 일들을 미국에 보고하는 임무를 주로 맡았던 주한 미 육군 방첩 정보요원이었던 김용장 미군501정보여단요원은 광주에서 미군 요원으로 보고한 내용과 일부 보수진영의 주장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전쟁”이었다는 지만원씨의 주장과 관련하여 “근거가 전혀 없다”며 “당시 광주는 해안 봉쇄가 철저하였고, 육로도 봉쇄되어 있어 잠입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는 미국 정부의 공식 답변서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기도 하다. 방송에서는 1989년 미 정부 답변서에 “북한의 위협 징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바 없다”고 기록돼 있음을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용장씨는 “미국에는 군사첩보위성이 있다. 주로 한반도를 2~3시간 간격으로 순회한다. 5.18 당시에는 광주 상공 궤도를 돌았다. 광주를 집중 감시했던 셈이다.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모든 상황을 들여다보는 그런 상태였다”고 말하며, 지만원씨 등 일부 보수진영에서 주장하고 있는 북한군 개입설을 일축했다.



지난 11일 광주 법정에서 열린 전두환씨 재판과 관련한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첫 번째는 헬기사격의 여부이고, 두 번째는 사자명예훼손이다. 김용장씨는 “21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헬기에서 기총사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UH-1H’ 소형헬기와 ‘M60’ 화기에 의한 기관총 사격이 가해졌단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헬기와 총기는 기존에 공식 발표된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전두환 회고록’에 따르면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사이 자신은 어느 시간이든, 전남 광주의 어느 공간에서든 실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광주에서 활동했던 두 비밀요원은 전두환씨의 광주 방문 정보를 직접 확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5.18 당시 광주에서 특수활동에 참여했던 허장환 505보안부대 특명반 요원은 “21일 사령관(전두환)이 광주에 다녀갔다. 그런데 바빠서 부대는 안 들렀으며 전투교육사령부에도 못 들르고, K57(제1전투비행단)에서 일만 보고 그냥 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용장씨 역시 “21일 점심 즈음 전두환 보안사령관, 이미 와서 대기 중이던 OOO, 505보안부대 OOO,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이 사람들이 거기서 회의를 했다”며 전두환씨가 21일 광주에 분명히 있었음을 증언했다.

전두환씨의 광주 방문은 그 자체로 많은 논란을 낳음은 물론, 방문했던 시간 또한 쟁점이 되는 사안이다. 왜냐하면 전두환씨가 방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단발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황상 그가 집단발포 명령을 내린 게 아닌가 하는 추론이 가능해지는 지점이다.



전두환씨의 광주 방문, 발포 명령 이뤄졌나

방송은 이 때문에 전두환씨의 광주 방문설은 앞으로 활동하게 될 진상조사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김용장씨는 ‘5.18특조위’가 협조를 요청해올 경우 이에 응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애국가와 함께 총성이 울려 퍼졌는데, 이날의 무차별 총격으로 68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 비극적인 그날은 영화 <택시운전사>에도 묘사되어 있는데, 극중에는 군인들의 조준사격 장면이 등장한다. 이를 두고 전두환씨 측은 날조라고 주장, 유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비수를 꽂는다.


당시 인근 건물 옥상에서 첩보활동 중이었던 허장환씨는 이날의 집단발표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상대가 위해를 가해올 때 보통 ‘서서쏴’ 자세로 응사를 하는데, 이날 발포한 군인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조준사격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5.18 민주화운동으로 확인된 행방불명자는 모두 81명에 이른다. 물론 확인되지 않은 행방불명자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암매장설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두환씨는 이에 대해서도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유언비어 가운데 암매장했다는 내용들이 나온다. 그런 주장들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용장씨는 “암매장한 건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소각했기 때문에 나올 리가 없다”는 것이다. “암매장된 시신들이 국군광주통합병원으로 옮겨진 뒤 보일러실을 개조한 시설에서 소각됐다”는 주장이다.



5.18 시민군이었던 양기남씨는 “위생병의 말을 들어보면 보일러실이 5월 내내 24시간 가동이 되었다고 하더라. 탐문조사를 해봤더니 5월이면 장독을 열어놓을 시기인데 통합병원 주변으로 재가 많이 날아 들어와 장독을 열지 못했다”며 김용장씨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차종수 5.18기념재단 연구원은 “국군통합병원에서 소각로와 관련한 이야기가 분명히 나왔고, 제일 중요한 것은 당시 근무했던 분들의 증언”이라며 많은 제보를 당부했다. 방송 역시 억울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39년만의 최초의 증언, 두 사람의 이 용기 있는 행위가 광주를 향한 얼토당토않은 각종 폄훼와 저격을 멈추게 하고 결국 이 땅에 진실을 올바로 세우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5.18 당시 광주에서 비밀 첩보활동을 담당했던 허장환씨는 신군부의 광주 진압과 관련하여 “열흘 간의 광주는 사전에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 의한 정권 찬탈의 수단“이라고 정의 내렸다. 39년만에 법정에 서면서도 ”왜 이래“라는 고함으로 꼿꼿하게 일관하던 가해자 전두환씨의 반성을 모르는 뻔뻔한 행태와 그를 옹호하는 일부 세력의 망동을 일축하는 발언이다.

이규연 방송 진행자는 이날 넬슨 만델라의 아래 명언을 인용하면서 “과거의 불의를 고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 그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첫발”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화해는 정의롭지 못했던 유산을 고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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