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바짓바람 시대,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

새 날 2019. 3. 1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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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자녀 교육 성공의 3대 법칙이라는 게 있다. 조부모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무관심을 꼽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고, 그저 돈만 잘 갖다 주면 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아이들 교육은 주로 엄마의 정보력에 의지해온 경향이 크다. 아버지는 ATM기기 역할만으로 족했다.

하지만 시대는 급변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공조는 물론, 온 가족이 함께 나서도 될까 말까 할 만큼 세상은 복잡다단해지고 불안해졌다. 지난 10일 방송된 <SBS 스페셜> ‘바짓바람 시대, 1등 아빠의 조건’ 편에서는 바짓바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아버지들의 모습과 이 시대에 진정으로 요구되는 아버지의 상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각각 짚어보았다.



방송에 출연한 일부 아버지들의 면면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소 극성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법한데, 어쨌거나 아이들의 스케줄 관리부터 구체적인 학습 방법까지 세세하게 코치해주고 시간을 함께하는 등 드라마 <SKY캐슬> 속 입시코디 김주영도 저리 가라 할 만큼 꼼꼼하고 완벽에 가까웠다. 



입시코디 김주영도 울고 갈 아버지들의 바짓바람

이들 아버지가 바라는 바는 확고했다. 구체적인 학교 이름을 제시하며, 적어도 자신의 자녀만큼은 어떻게든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는 게 목표였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반드시 이것 하나만은 해주어야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하는 것이라는 강한 믿음 덕분이었다. 치맛바람도 모자라 어느덧 바짓바람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자녀들의 학습에 대한 부모의 관여와 개입은 극심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바짓바람이 불게 된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임성호 입시업체 대표는 “고등학교 선택도 어렵고 학교 유형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며, “고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친 시점에서 대학을 6군데나 골라야 한다. 어떤 식의 적절한 판단을 해야 가장 손해를 보지 않게 될지 학부모의 공조가 없으면 아이 혼자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신종호 교육학과 교수 역시 “학생부종합전형이라고 하는 제도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수능이나 내신 성적만 가지고 대학을 가는 시대가 아니라 이제 학생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가를 보여줌으로써 대학에 가야 하는 까닭에, 밖에서의 이력들을 챙기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무엇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작금의 입시제도가 온 가족을 총동원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승욱 정신분석가는 다른 측면에서 이를 분석했다. “중고등학생들을 둔 부모세대가 40대 후반이다. 이들 세대가 한국 역사상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았다. 그러니까 아버지들에게 스스로 학습을 조절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아버지가 주도적으로 아이들을 학습시키고 학습계획을 짜며, 그것들을 일일이 점검한다.”

김은실 교육컨설턴트는 “남자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벌주의를 더 절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나 학교 등 어디에서도 학벌이 보증수표처럼 통하고 따라다니기에 이 티켓을 자녀에게 주고 싶은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를 바짓바람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진정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이란

아이들이 편하게 딛고 올라설 수 있도록 어떠한 종류의 사다리가 됐든 이를 구해주는 것이 좋은 아버지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 속에서 방송은 실제로 자녀 교육에 성공한 부모들의 구체적인 예를 사례로 들고 나섰다. 올바른 아버지의 조건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은 구체적인 아이들의 학습 스케줄이나 학습법 따위가 아닌 “성실한 삶의 태도와 좋은 습관”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로부터 관련 설문조사도 벌였다. 그 결과 해당 학교 재학생들의 아버지의 다수는 김주영과 같은 입시코디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자녀에게 심리적인 안정감, 자상함, 따뜻함, 롤 모델, 사랑 등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오늘날 자녀 교육에서 요구되는 아버지의 진정한 역할이 어떠한 종류의 것이 되어야 하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아버지 밑에서 학습한 아이들은 대개 누군가에 의지하는 학습법이 아니라 자기가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방식에 능통했다. 철저하게 부모 등의 통제 속에서 원하는 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이 비록 똑똑하지만 자립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현실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방송에 따르면 “부모의 역할이란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겠다며 닦달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아이가 편히 기댈 수 있는 어깨만을 조용히 내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공고한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와 입시교육체계 내에서 사실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아이들과 부모는 단언컨대 없다. 이른바 ‘SKY캐슬’로 대변되는 피라미드의 상단에 올라가는 일이 이 사회에서 잘 사는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나 어느 모로 보나 부모는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치맛바람도 모자라 입시코디에, 어느덧 바짓바람마저 심하게 불고 있는 것이리라.



학벌주의와 입시교육체계의 근간이 바뀌지 않는 이상 작금의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들이 자녀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든든한 사다리가 아닌 심리적인 안정감 같은 게 되어야 한다는 이승욱 정신분석가의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췄다.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쟁 일변도, 그리고 불안감 속에서 성장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아버지의 진정한 역할로 받아들여진다.

“아이들이 아버지로부터 원하는 게 있거든요. 아이들은 ‘괜찮다’ 라고 말해주는 아버지를 원해요. 이렇게 불안한 세상에서 아버지까지 같이 불안해하면서 자녀를 닦달하는 게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많은 아버지들이 ‘정말 괜찮다’ 라고 말해주면 좋겠어요.”



* 이미지 출처 : POOQ(푹)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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