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연인을 잃은 남녀.. 그들이 가까워지는 방식 '케이크메이커'

새 날 2019. 1. 2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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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제과사 토마스(팀 칼코프)는 출장차 이곳에 자주 들르던 이스라엘인 오렌(로이 밀러)과 연인 사이이다. 오렌에게는 아내 아나트(사라 애들러)와 아들이 있었다.

토마스와 오렌과의 관계를 굳이 성별로 헤아려보자면 동성 간의 사랑이었고, 사회 관습적 시각으로 보자면 명백한 불륜이었다. 그러니까 오렌은 멀쩡하게 가정을 이룬 유부남이었음에도 토마스와 또 다른 사랑에 빠져들었던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베를린으로 출장을 온 오렌은 토마스를 만난 뒤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이스라엘로 향했다가 그만 자동차 사고를 당해 세상을 등지고 만다. 연인의 죽음은 토마스로 하여금 큰 상실감에 빠트리게 했다.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토마스는 결국 오렌을 잊지 못해 그가 살던 이스라엘로 훌쩍 떠나게 된다.



그가 무작정 이스라엘로 향한 이유

영화 <케이크메이커>는 사랑을 잃고 상실감에 빠져든 두 남녀가 만나 점차 가까워지면서 상대방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간다는 무척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사랑 이야기다.

토마스의 오렌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는 그가 사망 후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렌이 입었던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하거나 조깅할 때 입었던 옷을 입은 채 똑같이 뛰던 토마스의 모습은 왠지 짠하기 그지없다. 덕분에 이스라엘로 향하는 그의 행위로부터는 이질감 따위가 전혀 느껴지지를 않는다.



토마스는 이스라엘에 도착 후 연인이었던 오렌의 아내 아나트가 운영하는 카페를 수소문한다. 오로지 오렌만을 생각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발길이 절로 그녀에게 닿은 것이다. 이는 남겨진 연인의 흔적을 하나하나 보듬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철저하게 본능을 따른 결과물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나트의 카페에 취업하게 된 토마스는 설거지와 채소 다듬는 일 등 허드렛일부터 도왔다. 하지만 그가 보유한 제과제빵 기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도 빛을 발하게 된다. 그가 만든 쿠키와 케이크 등이 워낙 맛이 출중하여 카페 내외부에서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연인을 잃은 남성, 남편을 잃은 여성.. 그들이 가까워지는 방식


토마스가 직접 만든 쿠키는 아나트의 입맛에 꼭 맞았으며, 멋지게 빚어낸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는 아나트의 마음까지 사르르 녹였다. 남편을 잃고 상실감에 빠져든 그녀의 공허한 마음을 토마스가 점차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연인을 잃은 토마스, 그리고 남편을 잃은 아나트는 그렇게 서로에게 가까워져갔다. 운명일까?



토마스는 자신과 오렌의 관계를 끝까지 비밀로 유지한 채 아나트를 통해 오렌의 흔적을 오랫동안 느끼며 간직하고 싶어 했다. 오렌이 아나트와 나누던 사랑의 방식을 토마스가 그대로 행하면서 오렌과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간직하고 싶어 했다.



아나트는 토마스가 빚어낸 달콤한 케이크를 토마스의 사랑과 점차 등치시켜갔다. 아나트는 남편을 잃은 상실감을 달콤한 그의 케이크로 메울 수 있어 좋았으며. 두 사람은 그렇게 점점 서로를 향해 빠져들기 시작한다.

민감한 주제를 절제된 영상미와 연기로 승화한 수작

대사가 많지 않고 배우들의 움직임도 매우 정적이다. 덕분에 여백이 유독 많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배우들의 숨소리며 발자국 소리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신경이 곤두서게 할 정도로 섬세한 작품이다.



한 마디도 없는 무표정한 배우의 얼굴로부터는 왠지 속사포로 대사를 읊을 때보다 더 많은 대사가 담겨있는 느낌으로 다가오게 한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만나 서로를 통해 치유하면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섬세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가서게 하는 작품이다.



아나트 배역을 맡은 사라 애들러는 그녀의 존재감만으로도 스크린이 꽉 찬 느낌이다. 절제된 연기란 무엇인지 이번 작품을 통해 그의 진수를 보여준 덕분일까? 말없이 먼 곳을 응시하는 등 줄곧 연인을 잃은 상실감을 묵묵히 소화해낸 토마스 역의 팀 칼코프 역시 발군의 연기력을 뽐낸다.

이 작품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종종 금기시하거나 갈등을 유발할 만한 요소들이 골고루 담겨있다. 국경과 성별을 초월한 사랑, 민족 간 역사적 관계, 그리고 문화와 종교적 차이 등 누군가에게는 민감하게 다가올 법한 주제들을 사랑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따뜻한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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