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따스한 온기를 전달해주는 영화 '우리가족: 라멘샵'

새 날 2019. 1. 24. 14:42
반응형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인기 있는 라멘집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별 이후 술에 절어 지내오던 터다. 하루하루가 자책의 나날이었다. 아버지가 왜 그랬던 것인지 당시에는 당최 이해할 수 없던 마사토(사이토 타쿠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마저 세상을 등지고 만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어머니의 기록이 담긴 수첩을 발견하고는 부모님만의 특별한 삶이 문득 궁금해진 마사토는 결국 모든 걸 정리하고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어머니의 고향 싱가포르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싼다.

현지에 도착한 마사토는 온라인상에서 평소 알고 지내오던 음식 전문 블로거 미키(마츠다 세이코)와 시간을 함께하며 여러모로 도움을 얻는다. 유년 시절을 부모님과 싱가포르에서 지내온 추억을 떠올리면서 과거 머물던 장소를 일일이 찾고, 음식 유랑을 통해 감회에 빠져드는 그다.



아버지의 '라멘', 어머니의 '바쿠테'

특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자주 들렀던 음식점의 싱가포르 전문요리 ‘바쿠테’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강렬한 것이었다. 그때에 비해 훌쩍 성장한 지금도 이 음식에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며 절로 놀라게 된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바쿠테 전문점은 모두 물색, 어머니와 동시에 누렸던 교감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어머니의 동생, 그러니까 마사토의 삼촌 카즈오(이하라 츠요시)를 만나게 된 건 바로 이즈음이다. 마사토는 삼촌을 통해 어머니와 할머니 사이가 좋지 않았노라는 뜻밖의 사실을 전해 듣게 된다.



이 영화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각기 라멘과 바쿠테라는 음식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음식은 일종의 매개체로서 화해와 갈등 해소의 역할도 하지만, 누군가의 영혼 그 자체로 변모하기도 한다. 마사토의 아버지는 일본 내에서 라멘 요리의 대가로 손꼽힌다. 그러니까 라멘은 마사토의 아버지를 상징하는 요소다. 그랬던 그가 매일 술로 버티면서 허무하게 숨져간 데엔 그럴 만한 속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마사토의 어머니는 싱가포르인이었다. 아버지가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는 동안 두 사람의 인연이 싹텄다. 유독 애정이 돈독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나중에 확인해보니 사실 매우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득했던 그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마사토는 바쿠테야 말로 어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는 음식임을 직감한다. 바쿠테는 마사토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요소이자, 마사토의 소울 푸드였던 셈이다.



새로운 소울 푸드의 탄생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상흔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당시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은 데다 직접적인 피해자이기도 했던 마사토의 할머니는 이러한 아픈 과거로 인해 일본인과 결혼한다는 딸을 극구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어느 누구보다 진정성이 있었지만, 할머니는 이러한 연유로 인해 끝내 사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딸과도 의절한다.

마사토는 아버지가 왜 그토록 힘들어했으며,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어머니와 할머니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인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딸이 세상을 등진 뒤에도 할머니의 마음은 원래대로 돌아올 줄을 몰랐다. 차디찼다. 그만큼 상처가 깊었던 셈이다. 굳게 잠가놓은 빗장을 절대로 거두지 않으려고 했다. 그 사이를 마사토가 어렵사리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 일어섰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진정한 소울 푸드였다. 아버지의 라멘과 어머니의 바쿠테를 융합하는 새로운 소울 푸드를 선보인 것이다. 마사토의 진심은 과연 통할까?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훌륭한 매개체

이 영화는 음식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노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한다. 음식을 통해 사람 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으며, 때로는 용서도 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영상은 결코 자극적이지 않으며, 화면 전환 역시 빠르지 않다. 느릿느릿 전개되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제법 힘이 느껴진다. 이야기 얼개 또한 신파 등 억지스러운 요소 없이 끝까지 비슷한 박자를 유지한다. 담백하다. 덕분에 여운이 오래 남는다.



세상 모든 음식에는 다양한 정서가 녹아들어있다. 민족적 색채가 담겨있는가 하면, 삶의 양태와 풍습 등이 배어있기도 하다. 만드는 이의 노고와 손맛도 들어있다. 덕분에 음식을 매개로 전달되는 따스함의 정서에는 진정성이란 게 깃들어있기 마련이다. 갈등과 오해를 푸는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영혼이 깃든 대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가족: 라멘샵>은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갈등을 해소하며 진정한 화해를 구해 서로를 이해하게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뜨끈한 라멘 한 그릇처럼 따스한 온기를 전달해주는 영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