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제2의 '말모이'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새 날 2019. 1. 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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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일제강점기, 우리말 사용이 엄격히 금지된 상황에서 조선어학회 회장 류정환(윤계상)은 ‘우리말큰사전’ 편찬을 위해 전국의 방언들을 모으는 작업을 일제가 눈치 챌 수 없도록 비밀리에 수행 중이었다. 회장과 회원들은 전국 팔도를 몸소 돌아다니면서 방언을 수집하는 수고로움을 자처했다. 북한 지역이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땅이라면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기꺼이 발품을 팔았다. 우리의 혼이 깃든 언어를 잃지 않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눈물 겨웠다.

영화 <말모이>에서는 류정환 회장이 일제의 눈을 피해 몰래 북한 지역에 들어가 현지에서 우리말을 지키려는 지식인과 학자들을 만나고, 그들이 애써 수집한 우리말을 차곡차곡 모으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렇듯 더없이 귀한 자료들이 모이고 모여 어느덧 ‘말모이’가 된 셈이며, 이 ‘말모이’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로 되살아나 일상에서 늘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말모이>는 지난 9일 개봉하자마자 단번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으며 우리 영화 그리고 우리말의 자존심을 곧추세우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말모이>는 지난 17일까지 총 160만 7643명의 누적관객수를 기록 중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비록 일제의 폭압이 있었을지언정 지금처럼 남과 북이 분단 상황이 되어 서로 오갈 수 없는 처지가 아니었던 터라 자유롭게 왕래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영화 <말모이>의 내용처럼 조선어학회를 이끌었던 지식인과 곁에서 이들을 말없이 도왔던 민초 덕분에 한글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올 수 있었으나, 남과 북의 분단 상황 고착으로 이번에는 남한과 북한의 언어가 단절되고 말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언어는 생명체와 같아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며 변화를 거듭한다. 따라서 사회의 변화와 흐름이 고스란히 이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반세기를 훌쩍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남과 북의 서로 이질적인 사회 경제 체제 아래에서 한글은 각기 다른 양태로 변화와 진화를 거듭해왔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의 말은 체제와 이념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것이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사전도 달라졌다. 남한은 '표준국어대사전', 북한은 '조선말대사전'으로 불린다.

그러던 중 남과 북의 언어학자들이 지난 2005년 2월, 남북통일을 대비하여 우리말을 통일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은 건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들은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를 결성, 남북한 언어 집대성을 목표로 국어사전을 공동집필키로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남북 국어학자들이 공동집필 중인 ‘겨레말큰사전’이다.

ⓒ한국일보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는 2005년 결성 이래 2009년까지 총 20회에 걸쳐 남북공동편찬회의와 4회의 공동집필회의를 진행하며 편찬 작업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부침을 거듭한 끝에 결국 2016년 중단된 바 있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해 3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면서 정부가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 재개 의지를 밝혔으며, 그해 10월 드디어 남북 관계자들이 평양에서 만나 올해 안에 편찬회의를 재개하기로 협의가 이뤄진 것이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염무웅 이사장에 따르면 겨레말큰사전 사업은 지금까지 대략 80%의 진척 상황을 보이고 있다 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일제강점기 그 엄혹하던 시절 우리의 정신이 깃들어있는 우리말과 글을 살리기 위해 모진 고초를 감내하며 오늘에 이르게 했던 ‘말모이’가 분단 상황이 고착화되면서 또 다시 흩어지는 운명을 겪어온 지 어언 7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 기나긴 시간의 흐름만큼 남과 북의 언어는 크게 달라져버린 상황, 남과 북의 언어를 다시 하나로 모으는 제2의 말모이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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