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SKY캐슬로 대변되는 우리 교육 현실 바꿀 수 있나

새 날 2019. 1. 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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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는 어릴 적에 자주 넘어졌다. 말도 늦게 트였고 운동신경도 느린데다 성장도 보통 아이들보다는 조금 더뎌서 처음에는 막연히 그런 이유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4살 이후면 혼자서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시기였음에도 툭하면 넘어졌다. 문제는 넘어질 때마다 스스로의 신체를 보호하지 못해 자꾸만 머리를 땅에 부딪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충격으로 큰 혹이 생기거나 구토를 하는 바람에 병원에 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CT를 찍고 의사가 괜찮을 거라는 진단이 나와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곤 했다. 나 스스로를 책망하는 일이 잦아졌다. 왜 자꾸 넘어지느냐며 아이를 채근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아이는 눈이 안쪽으로 몰리는 선천성 사시였다. 그 때문에 초점이 잘 맞지 않아 멀쩡히 서 있다가도 피식 하며 쓰러지곤 했던 것인데, 그것도 모른 채 아이를 혼내주거나 나 스스로를 원망했던 것이다.

영화 <지상의 별처럼>에 등장하는 이샨(다실 사페리)은 어느 누구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주변의 일에 관심이 많은 8살짜리 아이다. 보통 아이들 같았으면 예삿일로 넘어갈 법한 일도 이샨에게는 온통 즐거운 구경거리이자 놀이거리였다. 이렇듯 호기심 많은 이샨이었지만, 주변으로부터는 오히려 천덕꾸러기이자 문제아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들만큼 읽기 쓰기가 되지 않아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낙제를 받는 바람에 학년 승급을 못해 2년 동안이나 같은 학년에서 연거푸 수업을 받고 있는 처지이기도 했다.



이샨의 형(타나이 크헤다)은 모든 과목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뛰어난 아이였다. 학교애서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가정에서는 이상적인 자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에 반해 이샨은 천덕꾸러기에 말썽만 부리는데다 부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되레 반항하는 태도로 일관하여 부모의 속을 늘 썩이는 입장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샨은 난독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어 글 읽기와 쓰기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학습의 가장 기본인 읽기와 쓰기가 선천적으로 안 되다 보니 어떤 수업도 따라갈 수 없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이샨은 결국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JTBC의 주말극 <SKY캐슬>이 연일 화제다. 참담한 우리의 교육 현실과 맞물리면서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교육적 폐단은 지독한 학벌주의라는 워딩 안에 모든 게 고스란히 담겨있다. 공고히 자리 잡고 있는 이 학벌주의가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부터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고, 이는 다시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면서 학부모와 아이들을 불안감과 초조함의 볼모로 붙든 뒤 사교육 시장을 기웃거리게 만든다.


ⓒJTBC


갈수록 규모가 커져가고 지능화되어가는 사교육은 결국 이 지독한 학벌사회가 빚어낸 불안이라는 조금은 비정상적인 정서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난 괴물이다. 이 드라마의 소재이기도 한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인은 약간의 과장이 보태졌을지언정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엄연히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직업인이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지독한 입시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넣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공고한 학벌사회에서 좋은 학벌이 결국 이른바 상위 계급이 되는 지름길이므로 자식 잘못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을 테니 모두가 이에 매달리는 형국이다. 아이들의 입시 지옥 체험은 결국 부모들의 거침없는 욕망에서 비롯되고 있는 셈이다.


ⓒ찬란


이는 피라미드 형태로 이뤄져 있어 상단에 위치하려 할수록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구조다.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인까지 고용하여 아이들을 관리하는 이유 역시 부와 계급의 세습을 위한 연결고리를 위해, 아울러 자식만큼은 부모세대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갸륵한 마음 씀씀이에서 비롯된 바 크다. 학벌이 곧 부라는 인식은 공고하다. 현실도 이를 무시 못 한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영화 <하이-라이즈>에서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이 보다 높은 층에서 살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자들일수록 낮은 층에서 거주하는 부의 피라미드를 연상케 한다.

물론 이 건물 안팎에서는 상층부로 올라가고자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이 계속된다. 우리의 입시 경쟁처럼 말이다. 때문에 우리만의 독특한 교육 현실은 다름 아닌 이 영화 <하이-라이즈>의 그 건물을 빼닮았다. 드라마 <SKY캐슬>속 SKY캐슬 역시 이 하이-라이즈와 닮은꼴이다. 남을 짓밟아야 보다 상층부로 올라가는 이러한 구조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불안을 먹고 살아가는 사교육시장을 더욱 부풀려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수십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고액 과외로 우리 아이들을 내몬다. 공교육은 단순히 이렇게 학습된 아이들의 우열을 평가하는 한낱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샨은 또 다시 유급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번에 유급되면 학교로부터 영구 퇴학 처분이 내려진다. 이샨의 아버지(비핀 샤르마)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이샨을 기강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기숙학교로 보낸 것이다. 가뜩이나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강압에 가까운 주입식 교육에 이골이 난 이샨은 자괴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해하며 점점 말을 잃어간다. 학교를 옮겨달라고 하는 이샨의 외침은 공허하기만 하다. 그의 고통은 점점 극으로 치닫는다.



때마침 니쿰브(아미르 칸)라는 미술 교사가 이 학교에 부임해온다. 이샨에게는 일종의 단비였다. 점차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된다. 니쿰브는 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특수학교인 ‘튤립학교’ 출신답게 이샨의 이상 증상을 금세 발견하고 이샨에게 맞는 교육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한다. 니쿰브는 모두가 문제아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상황에서 이샨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점차 보듬으며, 서서히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인도의 교육 현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자비한 경쟁 체계 속에서 끊임없는 주입식 교육이 이뤄지고 있고, 그 안에서 무조건 그리고 어떻게든 버티라고 채근한다. 낙오자는 이샨처럼 문제아로 취급받는 등 아이들은 특정 시스템에 맞춰져 매끈하게 다듬어진 기계 부속품처럼 길러지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시를 읽고 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틀린 것이고, 해설해놓은 내용을 그냥 외워 읊으면 옳은 것이 된다. 칠판에 교사가 그려놓은 정물 그림을 도화지에 완전히 똑같이 베껴야 칭찬을 받는다.



기존 학습 방법과 달리 아이들의 눈높이에 적극적으로 맞추는 등 새로운 교육 방식을 접목한 니쿰브는 동료 교사들의 힐난과 비아냥의 대상이다. 그러나 저마다 배우고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인식이 확고한 교사 한 사람에 의해 이샨을 비롯한 모든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교 전체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아이들은 저마다 끼와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마땅히 이들 각자의 눈높이와 수준에 맞게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영화 <지상의 별처럼>이 전하는 메시지는 확고하다.



SKY캐슬의 상층부에는 영화 속에서 니쿰브가 인용한 것처럼 혹시 ‘똑똑하나 가치는 모르는 냉소주의자’들만 득시글거리는 건 아닐까? 영화 <하이-라이즈>에서 하이-라이즈라 불리는 빌딩은 결국 자기모순에 의해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견고하기 이를 데 없으며, 누군가에게는 충격과 씁쓸함으로 다가오게 하는 이 SKY캐슬, 하이-라이즈처럼 무너질 날은 과연 올까?



감독  아미르 칸

 

* 이미지 출처 : (주)앳나잇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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